<인터뷰>한민족복지재단 국제이사장 박세록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평양시내의 최신식 병원인'제3병원'건립에 앞장섰던 박세록(朴世錄.59.미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의대)교수가 최근'북한 의료품지원 모금'을 위해 서울을 다녀갔다.朴교수는 북미기독의료선교회 회장(현 명예회장)으로 95년 11월 8층 건물,5백 병상 규모의 제3병원이 문을 열 수 있도록 1백20만달러를 모금했다.이 병원은 건물을 빼고는 의료기기등 내부 기자재가 모두 미주교포와 국내 종교계의 힘으로 마련됐다.朴교수는 지난달 북한해외동포원호위원회(위원장 김용순)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했다.그는 미주 교포의사들의 방북.의료봉사활동과 의료품.쌀의 대북 지원문제를 북한 당국자들과 깊이있게 논의했다.〈본지 6월18일 21면 보도〉朴교수를 만나 최근의 북한 사정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이번 방북이 몇번째인가요.“88년 12월 첫 방문 이후 열네번째입니다.일년에 한두번꼴로 방문한 셈이지요.올해는 벌써 세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도 의료품 지원문제로 방북했나요.“그렇습니다.북한당국의 초청으로 제3병원을 둘러보고 의료품 지원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북한당국은 의료인들을 미국에 보내 선진 의료교육을 받게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그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눴지요.” -이번에도 의약품을 보내셨지요.“방북직전 미 재무부의 허락을 받아 앰뷸런스 2대,심전도 2대,부품 시약등 약 10만달러 상당을 일본에서 구입해 만경봉호를 통해 보냈습니다.” -제3병원 운영은 어떻던가요.“4박5일동안 매일 병원에만 가 보았는데 작년 방문때보다 더 형편없었습니다.개원때 보내준 새 기계들이 낡고 고장이 났는데도 그대로 방치돼 있었습니다.부품을 살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예컨대 수술실 천장에 붙어있는 무영등(無影燈)전구 9개 가운데 4~5개씩 터져 있는데도 새 것으로 갈아 끼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그 상태로 어떻게 수술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취용 후두경은 1년을 계속 써 끝이 부러져 있었습니다.그밖에 X-레이.분만기계등 각종 기자재의 소모품을 다 써 버렸다고 합니다.지난해엔 그래도 쓸만 했는데 이번에 보니 형편없이 된 것이 많았습니다.개원한지 불과 1년여밖에 안된 최신식 병원이 그 정도니 다른 병원실태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병원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까.“외래는 새 환자가 하루 2백명쯤 되는 등 북적거렸지만 입원환자는 거의 없었습니다.제가 방문했을 때 불과 16명만이 입원했다고 했습니다.5백병상에 비추어 보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북한병원은 병실이 컴컴하고 썰렁합니다.대부분의 복도불을 항상 꺼 놓았다가 사람이 지나갈 때만 잠시 켜곤 합니다.전력이 모자라기 때문이지요.” -방문기간중 수술장면 같은 것은 보셨나요.“전혀 못 보았습니다.병원측의 안내로 병실 몇개를 둘러보고 의료 기자재 실태만 점검했습니다.그리고 주로 회의를 했지요.” -그처럼 열악한 상태에서 환자들이 치료나 제대로 받겠나요.“그래서 병실에 입원환자들이 없는 것일 겁니다.제3병원은 새로 지은 병원이어서 신분이 비교적 높은 사람들만 치료를 받습니다.그런데도 안내한 병원 당국자들은'약이 없어 치료를 못한다'며 계속 의약품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한번은 같이 간 교포와 안내자를 따라가다 우연히 1인용 병실 문을 열었는데 40대 중반쯤 되는 남자가 병상에서 매우 괴로워 하고 있었습니다.직감적으로'사경을 헤매고 있구나'하고 생각을 했지요.바닥은 카펫도 없이 차디찬 시멘트이고 겨울인데도 히터가 안 들어오는 병실에서 모포 한장만 달랑 덮은 채 죽어가고 있었습니다.간병인도 없이 말입니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담낭 제거수술을 받은 환자라고 하는데 요즘 그 정도의 병은 수술만 잘 받으면 당일로 집에 갈 수 있습니다.그런데 중환자실도 아닌 일반병실에서 항생제도 제대로 못 쓰고 죽어가는 환자를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습니다.” -북한당국이 부탁하는게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새 기자재.부품을 보내주고 마취약등 약품도 구해 달라는 겁니다. 앰뷸런스도 부탁했습니다.원장이하 병원 간부들이 아주 간곡히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들러 북미의료선교회에 다시 이런 사실을 알리고 서울에 온 겁니다. 약이 없어 죽어가는 북한동포들을 어떻게든 도와야지요.” -교포의사들의 방북.의료 봉사계획은 어떤 경로로 성사되었나요.“북한당국이 사실 오래전부터 부탁한 일입니다.이번 방북기간중에도 저에게 환자 세사람을 수술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준비해간 수술기계와 믿을만한 마취의사등이 없어 그냥 사양을 하고 왔습니다.대신 미국에 귀국한 뒤 교포의사들과 상의해 아예 의료봉사단을 구성해 보내면 체류와 시술을 허용하겠느냐고 해 합의를 본 것입니다.

북미기독의료선교회 회원들과 이미 상의한 바가 있어 곧 의사들을 모으는등 방문단 계획을 구체화 하려고 합니다.각 분야 의사 4~5명씩 연간 20~30명을 보내 팀당 사정에 맞춰 체류케 할 계획입니다.” -최근 보도처럼 북한사회의 다른 형편도 실제로 처참하리만큼 악화되어 가고 있습니까.“저는 북한을 갈 때마다 제3병원일로 평양만 공식방문해 다른 지역 사정은 잘 모릅니다.평양은 9년전 처음 갔을 때에 비하면 크게 달라졌습니다.인구도 늘고 옷차림도 꽤 개방됐습니다.그러나 생활형편은 점점 어려워 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낍니다.사람마다 활력이 없고 바짝 마른 얼굴들에 힘겨워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평양에 있는 한 미주교포의 친지 부인이 있어 갈 때마다 만나는데 얼굴이 점점 나빠져 물어보니 말은 안하는데 사는게 힘들어 그런 것 같았습니다.그 분은 남편이 북한 고위층 출신인데도 말입니다.

유명한 냉면집인 평양 옥류관도 예전같지 않습니다.한번에 3천명이 들어갈 수 있다는 식당인데 손님이 없어 폐쇄한 방들이 많다고 합니다.

최근의 방북 보도들처럼 북한이 그렇게 처참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3병원이나 평양 시민들의 표정이 그 정도니 다른 지역은 틀림없이 훨씬 못할 겁니다.” -이번 방북에서 다른 논의는 없었습니까.“북한 의사들의 미국 연수문제도 그동안 줄곧 논의된 사항입니다.이번에도'의사를 4명쯤 미국에 보내 단기수련을 하게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느냐'고 물어 왔습니다.물론 재정은 저희 쪽에서 부담해 달라는 거지요. 현재로는 쉽지 않은 주문입니다.북한의사를 받아 줄 미국병원도 마땅찮고 교포들이 영어와 미국생활을 모르는 그들을 모두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지요.바로 그같은 이유에서 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사장을 맡아 설립을 준비중인 교포대학인'환태평양 대학(Pan Pacific University)'과 의료원 설립이 시급한 것입니다.

환태평양 대학은 이 지역의 우리 한민족들이 미국에서 함께 공부하고 함께 21세기를 만들어 가자는 취지에서 준비중인 대학입니다.그 한민족 사업에는 무엇보다 북한 동포들의 참여가 중요합니다.하여튼 그 제의를 기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의료품외에 쌀도 부탁했습니다.처음에는 미주 교포단체들이 인민학교(초등학교)를 하나씩 맡아 도와 달라고 하다 이번 방북때는 병원 환자에게 먹일 쌀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쌀 문제는 민감하니까 북미기독의료선교회 회원들과 공식 논의할 생각입니다.” -북한을 돕는 일에 교포사회의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사실 북한사회를 개방시키는데 미주 교포사회의 역할이 적지 않습니다.제3병원만해도 미주 교포 의료인들과 한국의 교회.사회단체가 함께 노력한 작품입니다.

북한 병원에 의료품을 보내고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돕는데 미주 교포사회가 또 한번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저희들의 발걸음을 관심있게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담=이창호 전문위원

<프로필>

◇박세록 교수=서울대의대를 졸업하고 65년 12월 도미,디트로이트 윌리엄 보먼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근무했다.87년부터 11년간 웨인 주립대 의과대학 정교수및 동 대학 여성홀몬센터 소장으로 재직했다.또 89년 4월에는 2백여명의 미주 교포의사들로 북미기독의료선교회를 창립했다.현재 캘리포니아대(데이비스 소재)의과대학 외래교수로 있으며,지난해부터 환태평양 대학(PPU)이사장겸 동 대학 의료원장을 맡아 설립을 추진중이다.올 2월 새로 창립된'한민족복지재단'의 국제이사장직도 맡고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