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간의 심포지엄.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세미나는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청중은 내내 마룻바닥에 앉았다. 오후 6시가 되자 도시락 200개가 배달됐다.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저녁을 때운다. 서둘렀지만 세미나는 밤 늦게까지 계속됐다. 모인 이들을 종잡을 수가 없다. 경주에서 올라왔다는 비구니 스님들이 보이는가하면, 소설가 강석경씨도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중·고생들도 있는가하면 대학교수들도 이들 속에서 묵묵히 강연을 듣는다. 도대체 무엇이 이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까.
나는 누구인가? 답변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존재에 대한 물음은 137억 년이란 우주의 역사, 생명의 진화, 의식의 탄생으로 소급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과학에서 철학적 사유를 펼치는 지적 실험. 박문호 박사가 ‘백북스 학습독서공동체’ 회원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백북스 학습독서공동체 제공]
지난달 31일 대전에 있는 고전교육기관 온지당의 공부방에서 열린 학술 행사의 모습이다. 이 날 주제는 ‘뇌과학과 동서 정신의학의 만남’. 쉽지 않은 주제를 놓고 인지심리·정신분석·의학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정모 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 미국에서 초청된 뉴욕주 공인정신분석가 김성호 박사, 한의사인 박성일 박사, 정신과 전문의 김갑중 원장 등의 발표가 이어졌다.
-‘학습 독서’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모임의 모토는 ‘어려운 책을 보자’다. 30~40%밖에 이해되지 않는 책이라야 학습의 가치가 있다. 취미·여가로 독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자세로 치열하게 ‘학습 독서’를 한다.”
-일반인에게 전문적 과학지식은 어려운데.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나 손댈 수 있는 영역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울 모임에는 일반상대성이론을 공부하는 ‘수학 아카데미’도 있다. 미적분부터 다시 공부하는 모임인데 지난달 첫 모임에 60명 넘게 찾았다. 참가자들은 중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하다.”
-과학 공부의 의미는 무엇인가.
“과학 지식은 철학으로 승화돼 삶의 지향이 돼야 한다. 학문에서 이념·종교 논쟁이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인 토론이다. 그래서 독서량의 70%는 자연과학 서적으로 채우자는 것이다. 자연과학을 아는 오피니언 리더가 많아야 국가 경쟁력도 높아진다. ”
-전문 연구자 집단과의 관계는.
“물론 전문가 집단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들이 생산한 지식의 열매로 우리 사회가 풍성한 지적 만찬을 즐기자는 것이다. 이러한 ‘향연’을 즐기는 가운데 사회적 창의력이 생겨난다.”
대전=배노필 기자
◆백북스 공동체는=2002년 한남대에서 시작됐다. 처음엔 대학 4년간 최소한 100권의 책은 읽자는 취지였다. 온라인 5000여 명, 오프라인 300여 명의 회원이 있다. 모임의 요청으로 절판된 과학도서가 복간되기도 할 정도다. 대전에서 매월 2회 여는 전문가 초청 강연은 160회를 바라보고 있다. 2007년 서울 모임이 생겼고 성남·부산 등에도 모임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주니어 백북스’ 모임도 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