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yle] 'Kill heel' 아찔한 아름다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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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009 S/S 패션쇼에서 구찌가 선보인 하이힐. 16.5㎝라는 엄청난 높이를 자랑한다. 발목에 세 줄의 스트랩을 더해 안정감을 부여했다.

지난해 가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렸던 프라다의 2009 S/S패션쇼에선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다 줄줄이 넘어졌다. 16㎝가 넘는 힐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결국 한 모델은 쇼 중에 구두를 벗어들고 워킹을 해야 했다.

높은 힐을 못 이겨 모델들이 줄줄이 넘어지는 사태를 두고 패션계에선 ‘킬힐 바이러스’라고 한다. 1993년 비비안웨스트우드 쇼에 등장했던 전설적인 패션모델 나오미 캠벨이 굽높이만 40㎝가 넘는 힐 탓에 캣워크에 볼썽사납게 주저앉은 데서부터 이 바이러스는 시작됐다. 킬힐은 굽높이가 10㎝가 넘어 거의 까치발을 해야 신을 수 있는 ‘극단적인’ 높이의 힐을 이르는 말. 외국에선 ‘킬러 힐(Killer heel)’이라고 한다.

올봄엔 이 ‘킬힐 바이러스’가 런웨이를 넘어 거리로 뛰쳐나올 태세다. 지난해 프라다는 물론 구찌·루이뷔통 등이 경쟁적으로 올봄 패션 트렌드로 킬힐을 선보였다. 슈콤마보니·레노마·까메오 등 국내 구두 브랜드도 10㎝가 넘는 봄신상품 킬힐 제품을 내놓기로 했다. TV 프로그램인 ‘우리결혼했어요’에서 인기를 모은 ‘신상녀’ 서인영도 킬힐 매니어. 이미 이 TV프로를 통해 국내 소비자들도 킬힐에 대한 ‘선행학습’이 돼 있어서인지 킬힐을 그다지 낯설어하지도 않는다는 게 구두업계의 전언이다. 올봄 거리에 나올 킬힐의 트렌드를 미리 알아봤다.

◆굽높이는 10~12㎝=하이힐은 꾸준히 높아져 왔지만 그동안 8㎝를 넘는 경우는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올봄엔 10㎝가 넘는 힐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될 전망. 올해 봄·여름을 겨냥한 패션쇼에서 16㎝가 넘는 킬힐을 선보였던 명품 브랜드들은 이들 중 일부 제품을 골라 굽높이를 10~12㎝로 낮춰 내놓겠다고 밝혔다. 구찌의 경우 지난해 가을 S/S패션쇼에서 선보였던 16.5㎝ 굽의 하이힐을 10.5㎝로 제작해 내놓기로 했다.


구두브랜드 까메오 유지현 디자인실장은 “지금까지 개발한 70여 족의 봄신상품 중 10~15족이 9㎝ 이상으로 11㎝를 넘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레노마도 10~11.5㎝ 사이 굽의 하이힐을 개발하고 있다. 구두업체들은 시중에 나오는 킬힐의 마지노선을 12㎝로 잡고 있다.

◆디자인은 섹시 & 투박=디자인 측면에선 한 가지 통일된 주제가 없다. 리본이나 스트랩 등이 달려 여성적 매력을 물씬 풍기는 디자인과 지난해 여름 유행한 글래디에이터 스타일을 변형한 투박한 느낌의 디자인이 혼재할 전망이다.

◆과감한 플랫폼=넘어지지 않고 킬힐을 신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플랫폼(앞굽)이다. 하이힐의 뒷굽이 높아지는 만큼 플랫폼을 높여 균형을 맞추어 주는 것. 플랫폼은 지난해부터 구두에 많이 장착됐다. 1㎝ 높이의 플랫폼을 구두와 같은 색상의 천을 덧씌워 잘 보이지 않도록 숨겨놓은 ‘속 플랫폼’이 대부분이었다. 구두와 플랫폼의 색상만 달라도 튀는 디자인에 속했다. 하지만, 올해는 플랫폼이 균형추 역할에서 구두의 디자인 포인트로 진화한다.

구찌가 이번 시즌 선보인 ‘가죽-메탈-스웨이드-가죽’의 네 가지 단으로 이루어진 플랫폼 샌들이나 빨간색과 흰색이 교차하며 5단으로 구성된 프라다의 뱀피가죽 플랫폼힐 등이 그 예다. 밑창 사이즈보다 작은 플랫폼을 붙인 재미있는 디자인도 보이고, 플랫폼과 구두 굽 전체가 연결되는 독특한 디자인도 나온다.

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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