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4者회담과 7.4공동성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홍콩반환'이라는 큰 역사적 사건은 한편의 좋은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평화롭게 진행됐다.

중국인들은 이 사건을 식민시대를

청산할뿐 아니라 21세기를 향한 그들의 기상과 힘을 세계에 과시해 중국의 위상을 높이는 축제로 승화시켜 환호와 축하를 받고 있다.

일본이 세계적 국가로 부상해 아시아인의 자랑이 된 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다.

우리 한민족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라는'한강의 기적'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심한 굶주림,죽음을 불사한 탈북자 행렬,폭언과 전쟁위협 등으로 한민족의 위상은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중에 늦게나마 남북한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한반도의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4자회담의 예비모임을 8월5일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그간 가장 문제가 됐던 한반도 문제해결의 주체(主體)문제와 관련해 2자,3자,4자,6자회담으로 하자던 명분 논쟁을 종식시키고 중국을 포함한 4자회담으로 합의본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 할 수 있다.

곧 개최될 예비회담에서 본회담의 일자.장소.대표수준.회담진행방식.의제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한다.

그간의 의견대립으로 봐 논란은 적지 않겠으나,북한의 처지가 점점 어렵게 되고 있어 북한측은 비교적 타협적으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그러나 이번 4자회담의

목적은 한국전쟁의 직접 당사국인 4개국이 한국전쟁상태를 불안하게 종식시킨 정전협정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데 있기 때문에 한반도의 모든 문제를 논의할 회담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한반도의 냉전사에서 보면 이번 4자회담은 한국전쟁 휴전 직후 개최됐던 1954년의 제네바회의를 계승한 국제회의로 볼 수 있다.그때 미국 국무장관 덜레스와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같은 세계 거물들이 그 회담을 주도했으나,변영태(卞榮泰) 외무장관과 남일(南日) 외상도

한반도문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이번에도 거물급 회담이 되었으면 좋겠다.그때와 비교해 이번 회담에서는 남북대표의 역할이 크게 증대될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제네바회담은 한국전쟁 직후 동서냉전이 극도로 악화돼 있어 처음부터 성공할 수가 없었다.그리고 더 큰 실패 원인은 제네바회담이 휴전체제의 안정보다 그 시점에서는 불가능한 한반도의 통일방식을 놓고 대결한'통일회담'이 된 것에 있었다.

이번 4자회담도 현재 한반도에 존속하고 있는 휴전체제를 개선해 좀더 안정된 평화체제로 재확립하는데 일차적 목적을 두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이번 회담은 2개 한국정부가 존재하는 한반도의 현실을 국제법과 제도로 보장해 남북한간의 평화공존체제 정립에 도움을 주려는 것이지 결코'통일회담'이 아니라는 것이다.사실상 이 회담은 남북의 경제협력과 투자.상호교류,그리고 군축 등 남북관계의 개선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중요 문제들을 논의할 적절한 회담형태가 아니다.이 문제들은 남북이 해결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4자회담 개최합의를 계기로 남북한은 당연히 72년의'7.4공동선언'과 92년의'남북간 기본합의서'에 따른 남북회담을 여러 형태로 다시 적극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7.4공동선언''남북간의 기본합의서'는“우리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하자”는 것이고,동시에'뭉치면 살고,흩어지면 죽는다'는 한민족의 생존의식에 근원하고 있다.다시 한번 뜨거운 민족주의 정신을 발휘할 때가 도래했다.

4자회담은 남북한이 남북의 2자회담을 할 수 있는 국제적 조건과 보장을 제공하는 촉진제일 뿐이다.그리고 4자회담의 성공 여부도 한반도의 주인이고 주체인 남북한의 태도와 정책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이번 기회에 우리 한민족도 한반도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 세기적 냉전종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멋진 드라마를 국제사회에 선물해 이웃나라 중국.일본과 같이 21세기 아.태시대 개척에 참여 할 수 있어야겠다.

이호재 고려대교수 국제정치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