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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영욕 156년 - 1842년 영국과 굴욕적 난징조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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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9세기초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홍콩은 1백56년간 격동의 세월을 겪게 된다.일본의 압제,홍콩반환의 역사적 영.중 공동선언등을 거쳐 홍콩은 드디어 7월1일을 기해'식민지 홍콩'에서'차이나 홍콩'으로 탈바꿈했다.

1842년 8월

식민지 홍콩의 역사는 아편전쟁으로부터 시작됐다.영국과 청(淸)제국간에 격돌한 아편전쟁은 청의 참패로 끝났다.그 결과 1842년 8월 난징(南京)에서 청은 영국에 홍콩섬을 할양해야 했다.이른바 굴욕적인 난징조약이다.

1941~1945년

41년 12월 일본은 진주만 공격에 맞춰 홍콩을 공략했다.홍콩은 1주일간 격렬히 저항했지만 역부족.일본은 수만명의 홍콩인을 처형하는 잔학상을 보였다.45년 일본이 항복하면서 영국군은 그해 9월 홍콩식민지를 부활시켰다.

1949~1970년대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두려움을 느낀 자본가와 전문인력 75만여명이 홍콩으로 대이주를 시작했다.이들을 중심으로 홍콩은 대번영을 이루게 된다.

1978년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을 전개하다 76년 사망했다.그는 화궈펑(華國鋒)에게 실권을 맡겼으나 78년말 덩샤오핑(鄧小平)이 권력을 장악하고 만다.이후 鄧은 79년부터 홍콩반환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했다.

1982~1984년

82년부터 시작된 반환협상 결과 리처드 에번스 주중 영국대사와 저우난(周南)중국 외교부부장은 84년 10월 홍콩반환 합의서에 서명했다.이어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와 자오쯔양(趙紫陽)중국총리가 공동선언에 서명했고 이는 85년 6월30일 공식발효됐다.

1995~1997년

95년 최초의 입법국 직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했다.그러나 96년 12월 반환후 홍콩을 다스리게 될 초대 행정장관에 둥젠화(董建華)가 선출되고 임시입법회의가 새로 구성됐다. 정선구.염태정 기자

<사진설명>

주룽반도를 영국에 양도한다는 베이징조약 조인식. [뉴스위크 한국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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