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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노동시장의 상품시장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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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자유시장 원리와는 다르게 움직였던 노동시장이 이제는 물건을 사고 파는 현물시장과 비슷하게 변해가고 있다.미국과 영국에서는 장기고용계약이나 특별급여가 사라져가고 있으며,비용절감이나 구조조정을 앞세워 무더기로 해고하거나 임금을 깎아내려도 기업은 별다른 공격을 받지 않고 있다.노동시장의 상품시장화의 배경으로는 정보화.지식화,서비스산업의 비중증가,그리고 각 부문에서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기술진보를 먼저 손꼽지 않을 수 없다.아울러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자유시장제도,개방에 따른 글로벌경제의 출현과 이에 따른 경쟁의 심화등도 노동시장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고 있다.

경직된 시장,경쟁력 낮춰 우리경제에서도 시장규제의 완화.개방이 진전됨에 따라 노동시장의 상품시장화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기업이 파산에 직면해도 고용을 줄일 수 없을 정도로 경직된 노동시장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어도 노동과 관련된 규제 완화나 개혁논의는 예나 다름없이 늘 강력한 저항에 부닥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어디에 있으며 어떠환 제도적인 개편이 뒤따라야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인가.우선 아무리 정보화.지식화,그리고 기술의 변혁이 노동시장 구조를 바꿔놓고 있다 해도 노동서비스를 다른 상품과 동일시할 수도 없고,해서도 안된다는 일반적인 정서를 무시할 수 없다.

그보다는 권위주의 시대에 줄곧 억압만 받아왔던 노조와 근로계층이 이제는 빛을 보는가 했더니 다시 자유시장주의가 이들을 무장해제하려 들고 있다.노동시장의 자유화가 직장의 불안정,소득분배의 불균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노조와 일반근로자들이 쉽게 물러날리 없다.

아무리 경제의 자유화.개방화로 불가피하다 해도 노동서비스를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는 시장원리가 반드시 바람직한 현상일 수는 없다.그러나

중국과 동남아의 값싼 공산품과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고,금융산업이

완전히 개방되고,국내기업은 저임금과 시장을 찾아 외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변화를 거부한다면 우리의 노동시장은

유연해지기도 전에 황폐하게 될 우려가 있다.

정책당국.노사 모두가 이러한 위험을 인식해 노동시장의 개편을 개방의

물결에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시장참여자 모두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

노동의 비인격화를 최소화하면서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를

바꿔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조합과 일반근로자의 정치적 세력으로서의

위상과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역할을 수용할 수 있도록 제도와 기구를

개편해 이들의 불만을 제도권 내에서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노동시장의 자유화로 고용이 불안정해지며 미국과 영국에서 보듯이

분배상태가 악화될 수 있으므로 분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그러나 조세나

정부의 복지관련 지출을 통해 분배구조를 개선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영세상공인.중소기업의 육성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도 이전같이 쉽지 않다.

기업의 근로자교육 중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비숙련 근로자들을

위한 기본교육.훈련.재교육을 위한 투자와 지출을 확대하는 것이나 정부가

투자를 얼마나 늘릴 수 있겠는가.결국 기업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근로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지식을 축적해 그들의 생산성 향상이 기업에 이익이

될 뿐 아니라 기업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인식해 앞장서서 교육.훈련 지출을

늘려가야 할 것이다.고용과 임금의 안정등 근로자의 복지증진이 바로 기업의

이익과 직결된다는 기본을 바탕으로 해 노사의 문제는 정부에 의존하기보다

바로 당사자인 노사가 해결해야 할 몫이다. 박영철 고려대 교수 경제학

< 필자 프로필 >

▶58세

▶서울대 경제학과졸

▶미국 미네소타대 경제학박사

▶고려대경제학과 교수(현)

▶한국개발연구원장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한국금융연구원장(현)

朴英哲고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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