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보너스 규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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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30면

금융회사 임원들의 거액 보너스 꿈은 이미 깨졌다. 올해 실적이 좋을 리 없다. 그런데도 각국 정부가 고액 보너스에 대한 전쟁을 선언하고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임원들의 보너스를 줄이는 금융회사에만 공적자금을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임원들이 더 이상 보너스를 받지 않아야 공적자금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업이 중요한 산업인 영국과 스위스도 조만간 비슷한 조치를 취할 태세다. 앞으로 금융회사 임원이 고액 보너스를 받는 일은 여객기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과 동일시될 듯하다. 지금 돌아가는 판에 비춰 그렇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의 조처가 터무니없지는 않다. 하지만 금융회사 보너스를 제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고액 보너스가 당연하다는 말은 아니다. 큰 사달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제 와 문제 삼는 것은 사후약방문이다. 5년 전에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잡았어야 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금융 시스템을 뒤흔들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금융회사들은 공적자금에 기대 겨우 숨을 쉬고 있다. 난파선이나 다름없다. 이런 마당에 거액 보너스를 챙기는 사람을 곱게 봐 줄 유권자는 어느 곳에도 없다. 이들이 금융인과 가까운 정치인에게 표를 주지 않을 게 뻔하다. 그러나 금융회사 임원들의 보너스를 규제한다고 주저앉은 금융 시스템이 다시 작동하리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현재 금융회사는 거액 보너스를 지급할 처지가 아니다. 옛날식으로 머니게임을 벌일 형편도 아니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내가 이기고 뒷면이 나오면 네가 이긴다’는 식의 게임을 벌일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날이 늘어나는 부실 자산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위기 이전처럼 거액 보너스를 지급할 수 있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한다.

금융회사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바로잡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임직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려 한다. 자율 규제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도 이미 과도한 보너스 문제를 바로잡는 쪽으로 반응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부의 규제보다 더 효율적으로 보너스 문제를 풀 수 있을 듯하다.

법과 정치의 힘으로 보너스를 규제하는 것은 어제의 적과 싸우는 셈이다. 보너스 규제는 유권자를 의식한 정치일 가능성이 크다. 나중에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위기는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다. 지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금융 시스템의 창의성과 효율성을 부숴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 시스템이 있어야 경제가 굴러가는 구조다. 정부가 여러 가지 규제로 금융회사를 묶어 버리면 우체국처럼 효율성이 떨어질 뿐이다. 더욱이 보너스를 규제하면 감독 담당자들이 ‘어제’의 문제에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내일’의 문제를 포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일에도 수많은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이런 위기를 미리 막기 위해 보너스 규제와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리=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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