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본을 걷는다' 김정동 교수 著 - 일본속 우리 문화유적 답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일본 근대사에 스며있는 한국인의 발자취.일제 강점기 36년은 물론 이후 우리의 자화상을 이해하기 위한 또다른 출발점이다.

한 건축학과 교수가 우리 근대사의 흔적들을 찾기 위해 일본으로 눈길을 돌렸다.한국 근대건축사를 전공한 목원대 김정동 교수.그가 일본에 빼앗긴 우리의 문화유산을 일일이 답사하고,또한 근대 한국 정치인.문화인들이 일본에 남긴 족적을 찾아내'일본을 걷는다'(한양출판刊)를 펴낸 것.일본 속에 숨겨진 우리의 아픈 과거를 본격적으로 들춰냈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80년 첫 방문 이후 그는 해마다 일본을 찾았고,93년 1년간 연구원 생활을 했던 도쿄(東京)대학에서는 도서관과 문서보관 창고에서 밤을 새우며 수십년 전 일본신문까지 훑어내는 노력을 기울였다.이렇게 해서 뽑아낸 일본 속의 한국유적 답사는 교민잡지'아리랑'에 연재됐으며 한번 소개된 장소에는 재일교포.한국 유학생.사업가들의 답사행렬이 줄을 이었다.

그는“큰 불행으로 남아있는 근대사의 흔적들이 일본의 방기(放棄)와 우리의 무관심 속에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역사의 환부(患部)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역사 발전의 기초가 된다고 보고 있다.

일본 상인 오쿠라 기하치로(大倉熹八郎)가 약탈해간 자선당(資善堂)도 그가 밝혀낸 것중의 하나.조선시대 왕세자가 거처하던 자선당은 도쿄 오쿠라(大倉)호텔 한켠에서 돌 흔적만 남기고 있었다.다행히 자선당은 지난해 1월 반환돼 경복궁에 자리를 잡게 됐다.

평양 팔경(八景)가운데 하나였던 애련당(愛蓮堂),도쿄 인근 가마쿠라(鎌倉)에 남아있는 궁궐 건축물 관월당(觀月堂)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일본에 흘러들어갔다.일본 상인들이 한 나라 궁궐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관상용으로 뜯어간 것이다.미군 폭격 등으로 아쉽게도 지금은 옛자취를 거의 찾을 수 없다.

일본의 한국문화 전문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도 비판의 대상.정부는 지난 84년 그에게 한국문화재를 보존한 공로로 보관(寶冠)문화훈장을 수여했다.반면 저자는“한국에서 빼내간 문화재로 민예관을 세웠고,우리를 무지몽매하다고 말한 그에게 어떻게 훈장이 주어졌는지 알 수 없다”고 성토한다.

일제시대 우리나라에 세워진 건물들도 알고보면 서양기술자의 손에 의해 지어진 것들이 많다.경복궁 앞을 막고 섰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잘 알려진대로 독일 건축가 게오르그 데 라란데가 설계한 것.그러나 독일인 건축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일본인들이 자기들의 위대함을 부각하기 위해 이런 역사적 사실은 은폐했기 때문. 뿐만 아니다.일본 국회의사당 건물에 한국인들의 피땀이 배어있다는 사실이 건물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다.의사당 건축은 연인원 2백만명의 재일 한국인이 동원된 대공사였다.일본의 대표적 기업 미쓰비시(三菱)의 본사였던 마루노 우치(丸の內)빌딩도 재일 유학생의 노역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저자는 또한 유길준.민영익.김옥균등 개화기에 일본 유학을 떠났던 인텔리들의 일본에 대한'그리움'도 비판한다.일본내의 국수주의나 침략주의를 가리지 않고 동경한 점을 따진다.

그는 결론적으로“일본을 생각하며 근거없는 증오심과 감탄은 모두 떠올리지 말라”면서“일본의 은폐와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사라져가는 우리의 상흔(傷痕)을 잊지 말자”고 부르짖는다. 홍수현 기자

<사진설명>

일제강점 이후 일본인 실업가 스기노 기세이(杉野喜精)에 의해 일본 도쿄

인근 가마쿠라(鎌倉)로 옮겨간 조선시대 궁궐 건물 관월당(觀月堂).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