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에서>4. 화성 왕모대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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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갯골을 따라 밀려드는 들물이 어느새 갯둑까지 차오른다.물때를 맞춰 그물을 보러 나갔던 배들이 하나둘씩 포구로 돌아오면 조용하기만 하던 선착장도 술렁이기 시작한다.

어창에서 갑판위로 쏟아져나온 꽃게들이 알차다.싱싱한 꽃게를 사기 위해 몰려든 도시인들과 상인들은 싱싱한 꽃게를 골라보며 셈을 한다.꽃게가 팔리고 나면 광어.우럭.노래미.농어 따위의 흥정이 시작된다.

서해포구를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경기도화성군서신면용두1리.서해를 향해 날렵하게 뻗어나간 화성반도의 끝.어선 40여척이 드나드는 조그만 포구다.이곳 사람들은 이 포구를'왕모대'라 부른다.여느 포구의 풍경이 그러하듯 야트막한 야산을 등지고 뻗어나간 갯둑 아래로 밀려드는 파도가 언제 봐도 시원하다.선착장에서 바라보면 멀리 풍도.입파도.육섬(섬이 6개인 무인도)이 보인다.

고기잡이는 대체로 이들 섬 앞바다에서 이뤄진다.소내기(조그만 어선) 뱃길로 1시간이내 거리.고등어.홍합을 미끼로 한 통발로는 꽃게.새우.박하지.소라.가재 따위를 잡는다.닻을 이용해 아가리를 벌려 치는'돼지그물'이라는 정치망도 있다. “잘만 하면 하루 1백만원벌이도 쉽다는 생각에 도회지 직장생활도 그만뒀지요.하지만 뱃일만큼 힘든 일도 없을 겁니다.바람 찬 날 물손을 몇시간이고 볼 때면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선착장에서 만난 어부 박영렬(30)씨.그가 말한 '물손본다'는 말은 그물에서 건져올린 고기를 간판에 쏟아놓고 가리는 작업.물건이 될만한 생선과 그렇지 못한 생선을 가리고 씻는 일이다.바람불고 파도를 만날 때면 더욱 힘들고 궂은 일이 물손보는 일이다.

한때 어촌에선 강아지도 지전을 물고 다닐 만큼 흥청거리던 시절이 있었다.하지만 간척사업으로 개펄이 줄고 연안이 오염되면서 그 좋았던 시절은 옛얘기가 된지 오래다.그래서 어부들은 요즘 포구에다 횟집을 많이 연다.

왕모대에도 이런 횟집이 십여군데 있다.대부분 어부들의 가족들이거나 한때

어부였던 이들이다.

왕모대에는 1백여가구가 산다.대대로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이다.17대째 이곳에서 살았다는 박근세(57)씨도 그중 하나다.젊어서

근력이 있을 땐 고깃배를 탔지만 이젠 힘이 부쳐 그만두고 횟집을

냈다.어부라면 누구나 한가락 할 수 있는 일이 그물 깁고 회를 치는 일.그가

주방에서 회를 치면 아들 내외는 손님상에 내놓는다.정갈하게 회를 뜨는

손길이 좀체 투박한 어부의 손마디 같지 않다.

“수백년은 된 포구지만 방파제 세우고 제대로 배를 띄우기 시작한지는

20년도 채 안되지요.전에는 땅뙈기 부쳐 먹는게 본업이고 고기잡이는 그저

부업에 불과했어요.” 금요일 오후 햇살이 제법 따가운 왕모대 포구.주부화가

대여섯명이 방파제를 따라 이젤을 세우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캔버스에는

포구 입구에 서있는 용바위며 해송이 갯바람을 이고 서있다.용바위 아래로

버려진 목선 서너척이 개펄에 묻혀 있다.

날물이 진다.썰물이 되어 개펄이 드러나면 개펄을 따라 포구의 아낙네들은

바지락.맛을 캐러 간다.도시인들의 눈에는 그저 황량하게만 보이는

진흙벌판.하지만 찰진 흙을 걷어내면서 돈을 캐는 아낙네들에겐 힘겨운 삶의

터전이다.

왕모대에 가면 비릿한 갯내음에 잠시 속이 메스꺼울지도 모른다.하지만 곧

비린내마저 친근하게 느껴진다.수평선과 목선,갈매기와 파도,갯바위와

굴껍데기,갯구멍과 꼬마 게가 잠시일 망정 어린날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게다가 꿈틀거리는 산낙지를 시큼한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고는

노을진 포구를 바라보라.왕모대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글.사진=이순남 기자

<사진설명>

개펄이 드러난 선착장에서 아마추어 주부화가들이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스케치하고 있다.선착장 입구에는 용바위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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