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시추 '가상현실'에 물어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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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해저 지층의 구조와 성분을 면밀하게 파악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된 가상현실. 가상시추를 해본 뒤 실제 시추작업(上)을 벌여 성공률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과거 석유를 찾으려는 국민적 염원을 담아 대륙붕을 주제로한 유행가까지 나왔던 적이 있다. 그만큼 석유는 우리 국민이 잘 살수 있게 해줄 믿음이었다.

석유는 땅 밑에서 해양생물의 시체 등 유기물이 오랜 세월 썩어 생성된 화합물로 불에 잘 타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불타는 물’ 석유가 우리나라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에너지 위기를 직감한 정부는 석유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동남아 일대의 석유시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석유시추에 처음 나선 1970년대 엄청난 비용이 문제였다. 동해안 대륙붕 평균 수심인 150m 해상에서 시추작업을 벌일 경우 해저에서 2000~3000m를 파고들어가는데, 모두 합쳐 1000만~1500만달러가 투입될 정도로 대형 공사다. 수심이 40~50m로 얕은 동남아 해안에서도 300만달러 정도가 들어간다.

*** 비용.오염 최대한 줄여

세계적으로 환경오염 피해도 컸다. 영화 '아마겟돈'에서 활약했을 법한 석유시추팀이 대륙붕의 이곳저곳을 뚫다보니 특히 알래스카 연안은 계속되는 시추작업으로 극심한 오염에 시달려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좀 더 경제적이면서 시일을 단축하고, 환경오염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석유 시추 과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최근의 석유 시추작업은 가능한 모든 과학기술이 총동원될 정도로 종합과학의 결정판이 돼버렸다.

지질자원연구원 허대기 석유해저자원연구부장은 "최근 이뤄진 기술발전으로 10%에 못미치던 시추 성공률이 영국 BP사의 경우 80%까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상현실 시스템이다. 탐사선의 음파탐사를 통해 해저 지형과 지층의 구조, 지층별 밀도 등을 면밀히 분석한 뒤 모든 데이터를 가상현실 지원 수퍼컴퓨터에 입력한다. 수퍼컴퓨터는 해저 지형을 그리고 지층별로 색깔을 달리해 대형 화면 위에 표현해낸다. 시추팀은 대형 화면 앞에 모여 어느 지점이 가장 석유시추 작업을 벌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는지를 토론한다. 실리콘그래픽스사의 '리얼리티 센터'가 상용화에 가장 성공한 모델이다.

수퍼컴퓨터는 최신의 지질과학 정보를 새로운 데이터에 응용해 준다. 석유는 처음 생성된 지점에서 암석의 틈 등의 통로를 통해 일정한 장소로 모이게 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석유는 해저 땅밑에서 위로 흐르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석유가 위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구조가 치밀한 암석이 윗부분을 지탱하고 있어야 석유는 모이게 된다. 주로 이암과 같은 점토 광물이 지탱하거나 낙타봉 모양의 지층 아래에 석유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수퍼컴퓨터는 이 같은 정보를 총동원해 석유의 존재가능성이 큰 지역을 시추팀에 알려주고, 시추팀은 최종 시추지점을 결정하게 된다.

*** 성공률 18배나 높아져

실리콘그래픽스사 정미교 이사는 "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상의 시추공을 뚫는 가시화 실험을 한 뒤 보다 가능성이 큰 곳에 시추공을 뚫을 경우 성공률은 최대 18배 이상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석유공사는 가상현실 시스템을 이용해 2000년부터 베트남 '15-1 광구'에서 모두 14개의 시추공을 뚫어 그중 13개에서 경제성 있는 원유를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석유공사는 국내 대륙붕과 해외 10개국에서 석유개발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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