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빅뱅>2. 칸막이 무너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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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가 발표한 금융개혁 세부추진방안의 첫번째 골자는 역시 칸막이의 파괴다.금융기관간의 업무영역 장벽을 허물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우리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이를“체급별 경기에서 무제한 격투기로 종목이 바뀌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지금까지의 금융산업이 체급과 가격(加擊)부위가 엄격히 정해진 권투였다면 앞으로는 아무 제한없이 목숨걸고 싸우는 격투기가 된다는 얘기다.당장 비상이 걸린 곳은 역시 종금사다.주력상품인 기업어음(CP)시장을 증권사에 열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CP발행규모는 80조원에 달했다.올해 대기업의 부도사태로 우량CP가 아니면 발행이 힘들지만 단일상품으로는 여전히 큰 시장이다.

현재 A급 CP를 발행할 수 있는 기업은 국내 10대 재벌뿐인데,이들은 대부분 증권사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이들 기업이 CP를 발행할 경우 계열사를 이용할 것이므로 종금사들은 우량CP를 확보하느라 전쟁을 치러야 할 입장이다.

이에 대비해 동양증권은 아예 CP업무 위주의 점포를 신설하는등 증권사들도 치밀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

신한종금 한근환(韓瑾煥)사장은 “종금사가 CP업무의 노하우가 있다고 하지만 종국에는 증권사들을 이겨낼 방법이 없다”며“특히 업무영역이 다양하지 않은 곳이 먼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종금사들은 국제금융.벤처캐피털등 나름대로 특화된 틈새시장을 개척해 살길을 모색하거나 아예 몇개가 하나로 합쳐 대형화하는 길을 택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나라종금 金重星상무) 보험사들도 좋은 시절은 다 갔다.생보사는 기업연금보험을 새로 다루게 된 반면 그동안 독점해온 종퇴보험시장을 은행에 열어줘야 한다.은행이 종퇴보험 시장에 뛰어든다는데 대해 생보사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생보협회의 신이영(辛利永)상무는“은행의 진출이 그나마 99년이후로 정해진 것이 다행”이라고 말할 정도다.

또 외국사들의 개방요구에 따라 변액보험까지 다뤄야 한다.투자수익률에 따라 보험료를 싸게 받을수도,보험금을 많이 줄 수도 있다.결국 투자기법으로 승부가 나는데 이에 능한 외국사를 국내사가 어느 정도 따라잡을지 의문이다.이에 대한 준비는 삼성.교보등 6~7개 대형사정도가 일본.미국에 인력을 파견해 연수를 시키고 있을뿐 신설사.지방사들은 무방비로 기다리고만 있는 형편이다.

이에 비해 은행은 다소 느긋한 편이다.우선 금융채발행으로 자금조달의 문이 넓어졌다.금리예측능력만 제대로 갖추면 지금보다 영업여건이 훨씬 좋아지는 셈이다.

반면 무분별하게 3년짜리 장기채를 발행한뒤 금리가 떨어지면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금리예측능력이 경영에 큰 변수가 된다는 얘기다.하나은행 윤교중(尹喬重)전무는“금리를 잘 예측하면 은행으로서는 시장이 더 넓어져 영업환경이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물론 금리경쟁이 치열해지면 은행의 마진이 당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지난해 시중은행의 평균 예대마진은 3.29%인데,이것도 더 떨어질 것으로 은행들은 예상하고 있다.S은행 관계자는“초기에는 예대마진이 1%대로 낮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은행들은 상호제휴에 눈을 돌리고 있다.은행끼리 서로 협력함으로써 비용을 아끼는 동시에 업무영역도 넓혀가자는 의도다.10개 지방은행이 한데 모여 하나의 상품(뱅크라인)을 개발한 것이 한 예다.하나은행과 제주은행이,신한은행은 우체국과 손을 잡는등 다양한 형태의 제휴도 이뤄지고 있다.이처럼 전략적 제휴가 한걸음 더 진전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은행을 축으로 해 여러 금융기관이 계열관계로 연결된 금융그룹이 등장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김동호.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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