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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론>'창고'에 갇힌 통기타 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60년대 중반까지 이 땅의 아버지와 그의 아들딸은 적어도 대중음악에 대한 취향을 놓고 갈등하거나 대립할 필요는 없었다.왜냐하면 대중문화는 당연히 실질적 구매력을 가진 어른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어린(혹은 젊은)세대들은 이미자나 남진,혹은 김세레나나 펄시스터즈같은 어른들의 노래를 곁눈질하며 따라불렀고 부모의 손을 잡고 추석맞이 리사이틀을 구경하러 갔다.

이 화해롭고 자애로운 풍경은 60년대 서구를 휩쓴 청년문화가 이땅의 대학가와 이른바'다운타운'에 자신들의 아지트를 건설하면서 서서히 깨졌다.어른들의 음악적 헤게모니는 위협받기 시작했고 마침내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청년들의 자유분방한 목소리는 시장과 매체의 패자(覇者)가 되었다.이 시기의 10대들 또한 아버지를 버리고 자신들의 형님뻘인 20대의 목소리에 매료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는 70년을 이어온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첫번째로 맞이하는 혁명이나 진배없었다.이 혁명의 무기는 다름아닌 여섯줄의 현으로 이뤄진 통기타 혹은 당시에'포크송'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모던 포크였다.서구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대변했던 폭발적인 로큰롤은 그래도 여전히 사회의 분위기를 암암리에 지배하던 유교적 금기,곧 육체성의 발현에 대한 제약에 걸려'고고장'으로 통용되던 밤의 유흥공간을 벗어나 주류로 진출하기는 버거웠다.당시의 청년들에게 통기타는 정녕 효율적인 영매(靈媒)였다.이 악기는 상대적으로 저렴한데다 쉽게 배울 수 있었고,휴대가 어렵지 않았다.그리고 무엇보다 이 반주악기 하나로 이삼십명이 하나의 정서적 공동체를 스스로 실현할 수 있었다.이 악기는 생산담당자와 수용자를 분리시켰던 대중음악의 소외를 극복하고,음악의 생산과 소비의 경계를 최대한 좁히는 민주주의를 생성시킨 것이다.

통기타의 서정적인 아르페지오 혹은 격렬한 스트로크의 울림,그리고 그것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노래말의 백가쟁명은 양병집과 한대수를 낳았고 김민기와 양희은을 출현케 했다.또 조동진과 정태춘을 불러냈고 트윈폴리오에서 라나에로스포.사월과오월을 거쳐 어니언스에 이르는 혁혁한 듀오의 제국을 설계했던 것이다.이 목록들은 바로 70년대에 10대와 20대 초반을 보낸 세대,곧 지금의 30대에서 40대 초반 세대를 특징지우는 중요한 문화적 기호다.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서바이벌게임에 지친 이 세대들은 음반시장에서 이탈했고 80년대와 90년대 세대들은 한국 특유의 대중음악 문법을 가능하게 했던 이 소리를 외면했다.설상가상으로 외로이 명맥을 수호해왔던 김광석마저 홀연히 떠남에 따라 한국의 모던 포크는 거의'황성(荒城)옛터'의 운명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무도 듣지 않고 아무도 만들지 않는다.그 세대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동물원의 구심점인 김창기와 그의 대학선배이자'꿈의 대화'로 80년 대학가요제의 왕관을 썼던 이범용이 힘을 합쳐 아름답고 쓸쓸하게 빚어낸 앨범'창고'는 오늘의 지친 이 세대에 전하는 한편의 수필이다.

김창기의 따뜻한 발성이'난 이제 예전의 내가 아냐'로 문을 열면 이범용 특유의 깔깔한 목소리가 '강릉으로 가는 차표 한 장을 살게'로 화답한다.이 앨범에는 문학소녀적인 감상주의는 없다.하지만 정작 오늘의 30대 중에 이 앨범을 집어들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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