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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세기를찾아서]21.잉카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잉카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 '당신의 향기가 나의 뿌리를 타고 내가 들고 있는 술잔까지 올라온다.'

침묵의 도시 마추픽추의 폐허에서 술잔을 들면 바예흐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이곳을 버리고 떠나간 잉카인의 슬픔이 술잔 속에서 잔잔한 물결을 일으킵니다.

프란시시코 피사로가 이끄는 황금 추적자들에게 쫓기던 잉카인들이 마지막으로 은거한 '최후의 도시'가 마추픽추입니다. 나는 관광열차 아우토비곤을 타고 우루밤바 협곡을 통과하면서 다시 한번 세월의 무상함을 금할 수 없었읍니다. 집요하기 그지 없었던 험처가 바로 이곳 우루밤바 협곡입니다. 아스라히 솟아있는 절벽과 절벽 사이를 소용돌이치는 강물만이 간신히 뚫고 지날 수 있는 곳입니다. 이 협곡의 안쪽 해발 2천4백m의 산상에 도시를 건설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1백73구의 미라만을 남겨놓고 다시 이곳을 떠나갔고 그후 이 도시는 망각 속에 묻혀버립니다. 그로부터 4백년뒤 1911년 이곳이 다시 세상에 알려졌을 때는 초목만이 무성한 폐허였읍니다.

우루밤바 강줄기가 실개천처럼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이 산상에 서면 가족을 땅에 묻고 쫓기며 떠나던 잉카인의 비장한 취후가 가슴에 젖어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혜와 피땀으로 세운 도시를 버리고 다시 어디로 사라져 갔는가. 이 도시의 비밀이 어떻게 그처럼 철저히 지켜질 수 있었는가. 황금을 찾아 잉카땅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진 익스플로러들까지도 설마 이처럼 깎아지른듯한 절벽 위에 도시가 있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읍니다.

바예흐의 시구에 있는 '당신의 향기'는 잉카의 후예가 망각의 역사로부터 길어올리는 그 땅과 그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애정입니다. 당신은 사이먼과 가펑클의 '철새는 날아가고'란 노래를 기억할 것입니다. 마추픽추의 폐허에서 듣는 이 노래는 참으로 가슴 저미는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이 노래는 원래 페루의 작곡가 다니엘 알로미아스 로블레스의 기타곡입니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이 곡에 노랫말을 붙여 부른 뒤 널리 애창된 노래입니다. 달팽이보다는 차라리 참새가 되고 싶다(I'd rather be a spallow than a snail)는 것은 이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잉카인의 슬픔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반어(反語)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은 마지막 구절입니다. 길보다는 숲이 되고 싶다는 구절입니다. 어디론가 떠나는 길보다는 그 자리를 지키는 숲이 되고 싶어합니다. 수많은 길을 스스로의 품속에 안고 있는 숲,그리고 발밑에 무한한 땅을 갖고 있는 숲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합니다.

나는 이 마추픽추가 숲이 되지 못하고 메마른 폐허로 남아 있는 현장이 비극의 어떤 절정 같았습니다. 왜 우리의 역사에는 지혜와 땀이 어린 터전들이 황량한 폐허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이곳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도초에 얼마나 많은 폐허를 갖고 있으며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폐허를 만들어내야 하는가.

잉카의 하늘을 지키던 콘도르마저 사라진 하늘에는 애절한 기타 음률만이 바람이 되어 가슴에 뚫린 공동을 빠져나갑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참새라 하더라도,또는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간 콘도르라고 하더라도 떠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이곳 마추픽추만큼 떠나는 것의 비극성이 사무치게 배어있는 땅도 없습니다. 떠나는 것은 납엽뿐이어야 한다는 당신의 시구가 생각납니다. 새로운 잎에 자리를 내주는 낙엽이 아닌 모든 소멸은 슬픔입니다.

1911년 이곳을 발견한 하이럼 빙엄은 이곳이 잉카 회후의 도시가 아니라고 하였읍니다. 이곳은 최후의 도시로 전승(傳承)되어 온 '비르카밤바'가 아니며 이곳으로부터 다시 어디론가 떠나간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비르카밤바는 잉카 최후의 도시로서 황금으로 만든 물건들이 대량으로 묻혀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황금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빙엄 역시 앨도라도를 찾아 헤매던 익스플로러였으며 그가 잉카 어린이의 안내로 이곳에 도착한 후 실어낸 짐이 무려 나귀로 1백50마리분이었다고 하였읍니다. 그 짐들 속에 금붙이는 단 한개도 없었다고 그는 강변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이 최후의 잉카 도시인 비르카밤바였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잉카의 수도 쿠스코가 침략자들의 수중에 떨어지고 울란타이탐보까지 함락되었다는 급보를 받은 이 도시의 사람들이 잉카의 모든 유산과 병약한 이들을 땅에다 묻고 황급히 아마존의 밀림 속으로 흩어져 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어쨌건 이곳은 잉카가 잉카로서 남아 있었던 최후의 도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비르카밤바와 엘도라도의 전설이 아직도 안데스의 험준한 산악과 아마존 밀림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익스플로러들은 이제 도시의 빌딩 숲속에서 엘도라도를 찾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이 비극의 도시 마추픽추를 떠날 때에도 다시 한번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것은 소위 '굿바이 보이'로 알려져 있는 차스키(Chaski)의 남아있는 모습입니다. 차스키는 광대한 잉카제국의 통신을 담당한 발빠른 파발꾼입니다. 쿠스코에서 리마까지 그 험준한 잉카트레일을 4일만에 답파하였다고 할 정도로 빠르고 건장한 다리를 가진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셔틀버스로 마추픽추를 내려올 때의 일이었습니다. 차창 밖에서 몇명의 어린이들이 손 흔들며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될때만 해도 버스에 타고 있는 간광객 중에는 그 소년을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관광지 어린이드르이 흔한 인사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굽이구빙 사행(蛇行)길을 내려오는 동안 굽이마다 버스를 향해 '굿바이'를 외치는 같은 소년을 목격하게 됩니다. 저 소년이 지름길로 버스보다 앞질러 뛰어 내려와 굿바이를 외치면서 버스와 함께 이길을 내려가고 있는 소년이란 것을 알면서부터 버스 속의 관광객들은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소년이 다시 차창가에 나타나 굿바이를 외치면 버스 안의 모든 관광객은 '오 마이 갓(Oh my God)'을 외치며 경악을 금지 못합니다. 이제 한 굽이를 돌 때마다 관광객은 그를 기다렸다가 탄성을 발합니다. 그러기를 일곱번 정도 반복하게 됩니다. 마지막 굽이에서 뜻밖에도 그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미처 뛰어 내려오지 못했나 하고 걱정하던 사람들이 버스 앞에서 달려가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버스 앞을 달리며뒷모습을 잠시 보여주고 난 후 세워주는 버스 위로 올라와 만장의 박스와 찬사를 받는 것으로 끝납니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들로부터 돈을 받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찬사와 함께 기꺼이 소년에게 돈을 줍니다. 아마 유럽관광객들은 그의 건각(健脚)을 예찬하는 헌금으로 내고 있는 것같았습니다. 나도 물론 돈을 주었습니다. 나는 잃어버린 우리들의 다리에 대한 벌금으로 돈을 치렀습니다.

잉카의 남아 있는 모습이 굿바이 소년으로 하여 더욱 처연해집니다. 험준한 산악에서 단련된 건각은 우리가 잃어버린 유산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마추픽추에 남아 있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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