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언지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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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패션계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패션쇼'처럼 화려함 이면의 추악한 면을 드러내고 풍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달리 21일 개봉되는 영화'언지프'(Unzipped:열린 지퍼)는 슈퍼 6㎜에서 16㎜.35㎜,구식 수동식까지 다양한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흑백과 컬러가 오가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신선하고 재미있다.

주인공은 요즘 패션 디자이너중 최고의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는 아이작 미즈하리(36).그의 일과 사생활을 꾸밈없이 드러내주는 이 다큐멘터리에는 케이트 모스.나오미 캠벨.린다 에반젤리스타.신디 크로퍼드등 슈퍼 모델들이 등장해 미즈하리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마지막 패션쇼 장면에선 정신없이 돌아가는 무대뒤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는 94년 뉴욕의 봄 컬렉션에서 '상상력의 한계에 부닥쳤다'는 혹평을 듣고 낙심한 미즈하리가 거리를 걸어가면서 자신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흑백영상으로 시작된다.패션 사진작가 더글러스 키브스는 이후 그해 가을 컬렉션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까지 미즈하리의 일상에 정직한 카메라를 들이댄다.북극의 에스키모를 그린 다큐멘터리 '북극의 나누크'등 미즈하리의 영감의 원천과 몸짓,유머감각,빡빡한 스케줄과 표절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신경질을 부리는 까다로운 성격,광기에 가까운 열정과 외로움까지 모두 드러내준다.

여기엔'패션쇼'와 같은 풍자는 없고 단지 젊은 디자이너 미즈하리의 일상과 일만 정직하게 담겨 있고 거기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온 열정을 쏟는 예술가의 행복함이 배어 있다.95년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관객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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