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책동네 사람들 이집트에 다 모였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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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이곳에 사는 30대 주부 사미아씨는 26일 세 살, 다섯 살인 두 딸의 손을 잡고 제41회 카이로 국제도서전(Cairo International Book Fair)이 열리고 있는 국제박람회장을 찾았다. 넓은 박람회장을 서너 시간 돌아본 끝에 그는 동화책 두 권을 구입했다.

“이곳에 이렇게 책이 많아도 제게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책이 비싸서 더 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요. 도서전에서는 서점 가격보다 싸게 파는데도 이것밖에 살 수가 없어요.”

21일부터 2월 5일까지 열리는 제41회 카이로 국제도서전을 찾은 이집트 초등학생들. 올해 열 두살이라는 에이샤左와 로콰이야는 한국의 어린이 그림책이 전시된 여원미디어 부스를 찾아 “그림이 너무 이쁘다”고 탄성을 지르며 자리를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사미아씨가 지불한 책 값은 50파운드(약 1만3000원). 남편의 한 달 봉급이 800파운드(약 2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큰 돈을 썼다. 사미아씨는 “이집트에서는 다양한 책을 접하기도 어렵고 서민들의 소득에 비해 가격이 턱없이 비싸다”며 “평소에는 책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집트 최대 문화축제=중동 최대 규모의 도서전으로 꼽히는 카이로 국제도서전이 21일 막을 올렸다. 보름간 열리는 이 도서전에 참가하기 위해 아랍 전역의 출판 관계자들이 카이로로 몰려든다. 1년에 한 번 이집트인들에게 책을 직접 팔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카이로대 아랍문학부 페르 마흐무드 모하메드 셰이커 교수는 “해마다 도서전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해외 신간을 대량 구입하고 있다”며 “외국에서 나온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관람을 적극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이로에서 출판 컨설턴트로 일하는 사미르 사드 칼릴씨는 “카이로 도서전은 학생·연구자와 가족이 함께 찾는 이집트 최대의 문화축제”라고 강조했다.

◆‘국제 행사’ 기대에는 못미쳐=하지만 카이로 도서전에 대한 바깥의 시각은 좀 다르다. 행사에 참여한 707개 출판사 중에서 522개가 자국 출판사다. 이밖에 다른 아랍어권 국가 출판사가 185개, 비아랍어권 출판사가 52개에 불과하다. 올해 주빈국인 영국에서도 4개사만 참여했다.

옌스 밤멜 국제출판인협회(IPA) 사무국장은 “카이로 도서전이 ‘국제’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위상을 갖추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그는 “이 도서전은 출판인들의 저작권 거래보다는 평소에 쉽게 책을 접하지 못하는 현지인들을 위해 마련한 장터에 가깝다”며 “이는 제대로 된 출판 유통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집트의 독특한 시스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집트에서는 거의 모든 출판사가 서점을 겸하고 있다. 각 서점은 자사 출판물 외에 다른 출판사의 책을 취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한자리에 다양한 책을 고루 갖춘 서점이 거의 없다. 이집트인들이 1년에 한 번 뿐인 도서전에 열광하는 이유다.

한편 이번 도서전에는 어린이그림책 전문출판사인 여원미디어가 국내 출판사로는 처음으로 참여했다. 김동휘 여원미디어 대표는 “카이로 도서전은 지금까지 국내 출판사에는 ‘미지의 세계’였다”며 “이번 기회에 중동의 출판 현황과 시장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가늠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집트 출판 시장이 예상보다 작아 놀랐지만 중동 지역 출판에 대해 얻은 정보도 적지 않다”며 “오는 3월에 아부다비에서 열릴 도서전을 통해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할 계획”고 말했다.

글·사진 카이로=이은주 기자

◆국제도서전(International Book Fair)=세계 출판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책 박람회. 각 출판사가 모여 일정한 공간에 신간을 전시하고, 저작권을 사고 판다. 매년 10월 열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볼로냐 도서전’은 어린이책 도서전으로 유명하다. 이밖에 런던·뉴욕·도쿄·베이징·과달라하라 도서전 등이 있다.



엘 안사리 조직위원장 “250원에 책 구경, 공연 관람 … 200만 명 몰렸어요”

 “지난주 토요일 하루에만 도서전을 찾은 관람객이 6만 5000명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총 관람객 수는 150만명이었지만 올해는 200만명이 넘을 것 같네요.”

카이로 국제도서전에서 만난 나세르 엘 안사리(62·사진) 조직위원장은 “카이로 도서전이 갈수록 국민들에게 인기있는 문화행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도서전의 인기 이유를 ‘문화행사’로 꼽았다. 입장료 1파운드(약 250원)를 내고 들어오면 책 구경 실컷 하고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영화·무용 공연 등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서민들을 배려한 다양한 문화공연 프로그램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도서전인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라며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대중들의 참여가 높은 또다른 이유로 ‘기차표 반값 할인’을 들었다. 도서전 기간에는 철도관리국과 협조해 지방에서 카이로로 오는 열차를 반값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사리 조직위원장은 카이로 도서전을 보다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잡게 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4년 전 위원장직을 처음 맡으면서 과거에 없었던 ‘주빈국(The guest of Honor)’ 프로그램을 신설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그는 “주빈국 행사는 해외의 문화를 소개하는 데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며 “그동안 독일·이탈리아·아랍에미리트연합이 주빈국으로 참여했고, 내년에는 러시아가 주빈국”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거래가 활발하지 못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카이로 도서전은 출판인들의 거래와 대중의 참여, 두 가지를 모두 중시한다”며 “앞으로는 해외 출판인을 위한 편의시설시스템을 더욱 늘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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