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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이들이 있어 한국미술, 풍부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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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술시장의 힘이 점점 세지는 가운데 젊은 미술가는 ‘미래의 블루칩’ ‘잠재력 있는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 세계와 미술사적 의미가 심도있게 거론될 기회는 드물었다. 극사실주의 서양화 위주로 편성된 미술 시장과 달리 이번에 선정된 작가 중 서양화가는 색의 기본을 천착하는 박현수(42)씨가 유일하다.

본지는 김달진미술연구소와 함께 지난해 말부터 큐레이터·미술사학자 등 전문가 50명에게 두 차례에 걸쳐 설문조사를 벌였다. 1차 조사에서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30, 40대 미술가 두 사람씩 추천받아 15명으로 압축한 뒤 2차 선정에 들어갔다. 최종 10인에 포함되지는 못했으나 선정위원들을 망설이게 한 미술가가 많아 한국 미술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권근영 기자



① 조각가 김주현씨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조각가의 작업실이란 넓은 공간에 대리석이나 철 덩어리가 놓여있고, 각종 조소(彫塑) 도구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곳이다. 서구 근대 조각의 대표작인 로댕의 ‘지옥문’에서 우리네 아파트 입구의 ‘모자상’에 이르기까지, 근육질 남성 조각가의 땀과 혼의 결정체가 그 같은 작업실에서 잉태될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김주현이라는 ‘여자’ 조각가가 아파트에서 네 마리 고양이와 가족과 함께 살면서 작업한다고 소개하면, 모르긴 해도 대부분은 그녀를 공예가 내지는 아마추어 조각가쯤으로 치부하리라. 그러나 이 조각가는 1990년대 독일 유학 이후 현재까지, 자신만의 창작 실험과 상호 학제적 논리로 구축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한국 현대미술을 질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중요 작가다.

서울 잠실동 작업실에서 만난 김주현씨. 딸·고양이들과 지내는 방 한 칸 외에 아파트 나머지 공간은 전부 작업실로 쓴다. 뒤에 보이는 작품은 30m가량의 대형 설치 작품인 ‘생명의 다리’ 모형.


‘2005년 올해의 예술상’‘김세중 청년조각상’ 같은 실적이 그 예술적 성취를 보여 주는 객관적 지표다. 하지만 더 주목할 부분은 김주현의 미술이 관계 맺고 있는 영역들, 탐구, 그로부터 구현되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이다. 작가는 철판을 경칩 모양으로 만들어 규칙적으로 끼워 늘이는 ‘경첩’ 조각을 만들면서 ‘복잡성 과학’과 자기 조각의 친연성을 발견했다. 직사각형 철판 조각들을 규칙적으로 이었음에도 결과적으로 불규칙한 섬의 군집(群集) 같은 자연 형태를 산출하는 자신의 작품과, 유클리드 기하학을 초과하는 어떤 현상들에서 ‘자기 조직화의 원리’를 발견하는 복잡성 과학의 연구가 상관성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이후 작가는 ‘복잡성 연구’ 작품을 통해 과학의 논리를 조각의 창작 개념에 적용하여 예술의 형상을 빚어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현재는 적극적으로, 세계의 생물학적 근원과 미래를 다루는 생명과학을 참조하면서 보다 좋은 환경을 창출하는 예술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上) 2만2000개의 함석판으로 된 경첩, 2005, 김종영미술관 전시 장면, 20m×8m×30cm
(下) 다리-아홉 개의 기둥 모형(전시 장면), 2007, 1971개의 나무 막대 볼트 조립, 9m×9m×2.6m [이상 김주현씨 제공]


‘생명의 다리’ ‘생태적인 건축물’ 시리즈가 그것이다. 전자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인간이 그 서식지를 벗 삼아 보행할 수 있는 한강 다리 모델이고, 후자는 건물 구조에 작은 텃밭과 숲을 조성할 수 있도록 설계한 빌딩 모델이다. 이 ‘제안 성격’의 작업들에서 핵심은 인간과 자연이 상호 조화의 삶을 누릴 지속 가능한 도시의 생태다. 현대 생명과학은 이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고, 예술은 구체적인 동시에 이상적인 형태를 제시한다. ‘친환경과 생태’를 외치면서도 여전히 자연 지배적 토목사업을 펼치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김주현의 미술은 이런 모순적 현실에, 환경 미화를 위한 ‘장식품 조각’을 넘어서는 실천적 조각으로 개입하고 있다.

강수미 (미술평론가)



◆조각가 김주현=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조소과,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93년부터 지금까지 열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2005년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서 연 개인전 ‘확장형 조각’으로 ‘올해의 예술상’과 ‘김세중 청년조각상’을 수상했다. 올해 미국 록펠러 재단 벨라지오 센터의 작가 창작 스튜디오에 참여한다. 규모가 큰 조각품의 특성상 그의 작품은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하지는 않다. 화랑을 통한 작품 판매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공공조형물 의뢰가 많아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앞에 3m 높이의 경첩 조각 ‘사과’가 세워져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부산시립미술관·경기도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는 등 김주현씨의 작품은 공공장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선정위원(가나다 순)

▶큐레이터:김노암(아트스페이스휴 큐레이터) 김미진(예술의전당 전시예술감독) 김선정(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김종길(경기도미술관 큐레이터) 김준기(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류한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박래경(한국큐레이터협회장) 박천남(경희대 겸임교수) 송인상(예술의전당 큐레이터) 서진석(대안공간루프 대표) 신현진(쌈지스페이스 큐레이터) 윤상진(풀앤풀 디렉터) 이수균(성곡미술관 학예실장) 이영철(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장동광(독립큐레이터) 정준모(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조관용(독립큐레이터) 최은주(덕수궁미술관장) 태현선(삼성미술관 선임학예연구원)

▶미술사학자·평론가:강수미·고충환·김백균(이상 미술평론가) 김복영(전 홍익대 교수) 김성호(쿤스트독미술연구소장) 김성희(홍익대 대학원 교수) 김영나(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김영순(미술평론가) 김영호(중앙대 서양화과 교수) 김현숙(미술평론가) 박일호(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교수) 서성록(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송미숙(성신여대 서양화과 교수) 신항섭(미술평론가) 유진상(계원디자인대 시각예술학과 교수) 윤난지(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윤범모(경원대 회화과 교수) 윤우학(미술평론가) 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부회장) 이대범·이주헌·임창섭(이상 미술평론가) 조광석(경기대 교수) 조은정·최열(이상 미술평론가) 최태만(국민대 미술학부 교수) 하계훈(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미술전문지 기자:김상철(월간 미술세계 편집주간) 류동현(월간미술 기자) 호경윤(월간 아트인컬쳐 수석기자) 홍경한(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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