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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로 일궈낸 IT 초강국의 유전자는?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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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나라? 전사의 나라?

유목민족의 진취성·호전성+농경민족의 교육열·탐구심…“한국의 시대 새로 열린다!” #한국인의 DNA 특질

월간중앙그렇다. 누가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던가? 우리 민족을 매우 평화로운 사람들로 포장한 이 말은 미국의 유명한 천문학자인 퍼시벨 로웰이 1883년 겨울을 서울에서 보내고 그 경험담을 책으로 엮어낸 <조선전(chosen: the land of morning calm)>의 제목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책을 통해 “조선인의 흰옷과 느리고 우아한 움직임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고 썼다.

로웰이 살아 돌아와 양철냄비처럼 들끓는 한국인의 다혈질적 기질과 최근 국회에서 벌어졌던 폭력사태를 본다면 책 제목을 고치고 싶어질 것이다. 조선조 말에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도 대부분 한국인들에 대해 평화적이며 선량하다고 평가했다. 한민족이 다른 민족을 침범한 역사가 거의 없다는 점도 그 평가를 거든다.

한국인에게 내재한 양 극단의 상반된 기질의 원인은 무엇일까? 역사적 고찰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다음은 김병모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의 말이다.

“한국인의 여러 가지 문화요소를 들여다보면 뚜렷하게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북방계 유목민과 남방계 농경민의 특성이 혼재된 것이죠. 박혁거세신화나 주몽신화에는 유목민족에서 드러나는 천손신화와 농경민에게서 나타나는 난생신화가 모두 보입니다. 민요를 봐도 그렇습니다. 북방인의 민요는 한 소절이 스타카토로 끊어지는데, 우리 민요 중 <새타령>이 그런 경우이지요. 남방인들의 노래는 뒤를 질질 끄는 특징이 있는데, <진도아리랑>이 그렇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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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2007년 11월15일 고사장인 서울 중앙고등학교 앞에서 한 학부모가 기도를 하고 있다.

유학을 숭상하고 한족을 높게 여기던 조선시대를 거치며 북방계 민족과 우리 간의 동질성은 잊혀졌다. 역사학자 이덕일 박사의 말이다.

“조선시대 주류인 유학자들은 우리 민족정신의 뿌리를 중국의 한족에서 찾으려고 했고, 원래 뿌리인 유목민족은 오랑캐로 내모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핏속에는 호전적인 전사의 유전자도 생생히 흐르고 있다. ‘북방 몽골계’는 그저 인종적 분류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 우리의 기질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다음은 몽골 전문가인 박원길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의 말이다.

“민족의 구성을 따져봤을 때 60% 이상은 북방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려는 25대 충렬왕부터 마지막 왕까지 모두 몽골의 여인을 왕후로 맞았고, 또 고려 여인들도 몽골로 시집가기도 했죠. 이처럼 역사적으로 몽골과 우리 민족은 가깝게 접하고 있었습니다. 만물에 혼이 있고 하늘을 존중하는 샤머니즘적 습성도 북방계와 비슷합니다.”

북방의 민족과 남방의 민족, 유목과 농경의 문화가 한반도 안에서 뒤섞이고 하나가 됐다는 결론이다. 여기까지는 고대국가가 성립된 이후의 역사를 근거로 한 이야기다. 서울대 의대 이홍규 교수는 실제로 한국인들의 DNA를 분석하고 한민족의 유전적 기원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

“4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지구에는 큰 기후변화가 계속됐습니다. 빙하기를 맞이해 인류의 이동도 영향을 받았죠. 한민족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몽골리안의 원류는 마지막 빙하기 때 바이칼 호수 지역을 피난처 삼아 견디고 있었을 것입니다. 날씨가 풀어지자 남쪽의 한반도 쪽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교수는 인류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유전적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 먼 옛날 선조들의 이동 경로도 어느 정도 추적할 수 있었다. 한국인의 주요 유전형은 북방계에 몽골 계통과 많은 공통점을 보인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의 선조가 중앙아시아를 통하고 시베리아를 거쳐 남쪽으로 내려온 흔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자신이 쓴 <바이칼에서 찾는 우리민족의 기원>에서 한국인의 외향적 특징도 북방에서 지낸 세월 때문에 구축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속하는 몽골리안의 모습 중 추위에 적응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많다. 지방층이 두꺼운 이중의 눈꺼풀, 뺨, 위턱과 아래턱에 지방층이 두꺼운 것, 둥글고 각이 없는 머리 모양, 다리가 짧고 상대적으로 둥근 체형, 피부의 색깔이 창백한 것…(후략)”

우리의 피와 문화 속에 녹아든 남방과 북방의 특질이 현대에도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강인함과 활력, 승부근성은 북방의 전사민족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양궁·펜싱·레슬링·유도·사격·태권도 등 전투 관련 종목에서 메달을 집중적으로 거둔다. 말을 달리던 북방 유목민족처럼 우리도 역동적 기질을 타고난 민족이다.

이런 핏줄은 “빨리빨리”를 습관적으로 입에 달고 사는 모습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국인의 성급한 성격은 각종 부실공사와 무사안일주의로 연결돼 외국인들에게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하고는 했다. 그러나 조급성이 가져다준 것들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이 우리나라에서 첫선을 보인 지 불과 4년 만에 5,000만 명이 쓰게 될 정도로 빠르게 통신망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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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비빔밥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넣고 있다. 최근 산업계에서도 기술 간의 융합을 시도하는 ‘비빔밥 정신’이 유행하고 있다.

국가적 지지를 등에 업은 사업이기도 했지만 가정마다 선으로 연결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빨리”를 외치지 않고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는 전 세계 181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디지털기회지수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정보통신의 인프라는 우리나라가 구축한 가장 든든한 무기 중 하나가 됐다. 경제위기를 맞아 각국의 지도자들도 대책 마련에 시급하게 나섰는데, 여기서도 한국의 ‘스피드 정신’이 눈에 띈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중국·일본의 리더들이 내놓은 전략과 정책을 통해 각자의 특징과 강점을 살펴봤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6%에 달하는 800조 원을 경기부양을 위해 투입하기로 함으로써 스케일로 승부를 거는 양상이다.

일본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녹색 뉴딜 구상을 내놓아 시장의 원리를 치밀하게 꿰뚫는 정책이라고 평가받았다. “한국의 강점은 속도다. 이 대통령이 직접 상반기에 예산 60% 투입을 독려하면서 재정 조기 집행에 승부를 걸고 있다. 세금환급(지난해 6월)도 제일 빨랐다.” -2009년 1월12일자 <중앙일보>

앨빈 토플러는 혁명적 부를 창출하는 미래의 요인으로 시간·공간·지식을 꼽았다. 세계가 직면한 위기 역시 각 분야의 속도에 차이가 있어 충돌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국의 경영자들은 항상 속도에 주안점을 둔다. “경영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기획력과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은 먼저 보고 먼저 생각하고 먼저 실행하는 것이다.”

취임을 앞둔 이석채 KT 사장 내정자가 임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한 말이다.

박미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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