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이 맺어준 인연 'TV중매' 첫 커플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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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5년전 홀로 돼 외롭게 살아온 김영란(34.S생명 보험설계사)씨는 어느 월요일 KBS1 '아침마당'프로'TV중매'를 보다 화면에 나온 한 사람에게 시선이 고정됐다.

“그 사람의 처지가 저와 그렇게 비슷할 수 없었어요.” 3년전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오재승(38.유아복 전문회사 차장)씨가 들려주는 아이들 병치레 얘기에 김씨는 공감을 넘어 커다란 애정을 느꼈다.

김씨가'TV중매'를 보게 된 것은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었다.아이가 아파 출근을 못하고 마음만 어수선하던 차에 별생각 없이 TV를 켰다가 숙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오씨의 인상과 그의 사연에 강하게 끌렸다.아마 그날 아이가 감기로 아파서였는지도 모른다.

김씨의 뇌리에는 남편이 혼자 운전하고 가던중 교통사고로 숨지자 망연자실했던 92년 어느 겨울밤과 아이들 아빠의 빈자리 때문에 가슴 아팠던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김씨는 지난 3월17일 오씨의 공개구혼에 응하게 됐고 1주일후 프로그램에 출연,TV에서 보던 오씨와 처음으로 인사하게 됐다.

오씨의 사연 또한 애닯다.

오씨는 94년 겨울 교통사고를 일으켜 아내를 잃고 설상가상으로 보상금을 대느라 재산을 거의 날렸다.딸 둘은 원주의 어머니에게 맡기고 어떻게든 아내없는 삶을 견뎌보려 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났을까.오씨는'사람좋게 사는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던 지난 세월이 억울해졌다.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 운명이 잔인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오씨는 독한 결심을 했다.유서를 썼다.적십자 입양아 센터에 가 아이들 해외입양 수속도 알아봤다.“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길에 원주가 가까워질 수록 되돌아 갈까 수십번 생각했어요.결국 아이들 앞에서 눈물만 펑펑 쏟고 말았습니다.” 마음을 돌린 오씨는 아이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TV공개 구혼에까지 나선 것. 그러나 맺어지기까지에는 또다른 문제가 놓여 있었다.

“제 아이가 둘이라고 말할때 오선생님 얼굴이 잠시 어두워지는 걸 봤어요.하나인 사람을 원한다고 했거든요.” 오씨는 자신의 아이까지 합쳐 넷이나 되기에 고민했다고 한다.그러나 김씨를 놓치고 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이내 결심을 굳혔다.

“난 당신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결혼합시다.” 오씨는 김씨와 세번째 만나는 날 청혼을 했다.이들은 오는 21일 낮12시 KBS 국제방송센터에서 결혼식을 올린다.이들은 KBS1'아침마당'의'TV중매'가 지난 2월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결혼으로 맺어지는 첫 커플이 됐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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