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M&A서배운다>8. 퀘이커오츠社 울린 스내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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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80년대말 미국은'뉴에이지'바람이 불었다.콜라에 싫증이 난 맨해튼의 여피(봉급을 많이 받는 직장인)들은 물도 와인도 탄산이 들어 짜릿해야 좋아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스내플이다.홍차를 끓여 식힌 후 과일향을 첨가해 주둥이가 넓고 큼직한 병에 담은 이 진기한 음료는 순식간에 맨해튼을 휩쓸고 미국 전역으로 시장을 넓혀갔다.93년 14달러에 공모한 주가가 상장 첫날 29달러에 거래된 사실만으로도 당시 스내플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94년11월 시리얼(아침식사용 곡물식)로 유명한 퀘이커오츠사는 당시 매출 7억달러였던 스내플을 17억달러에 사들였다.월가에서는 10억달러 이상 비싸게 줬다고 수근거렸지만 윌리엄 스미스버그회장은 코웃음쳤다.내가 누군가.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게토레이를 83년 인수,스포츠음료의 대명사(96년 매출 14억달러)로 만들지 않았던가.그는 제2의 신화를 창조하고 싶었다.스내플의 인수로 퀘이커오츠는 단숨에 코카콜라.펩시에 이어 3위의 음료회사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의 시작이었다.쉽게 달아오른 열기는 식기도 쉬운 법이다.80년대 30%,90년대 들어 94년까지만 해도 25%에 머물던 소위 뉴에이지음료시장의 성장률이 95년 12%로 낮아졌고 96년엔 한자리수로 급격히 둔화됐다.여기에 미스틱(국내 편의점에서도 판다)과 같은 경쟁상품들이 속속 등장했고 마지막엔 음료계의 두 거인 코카콜라와 펩시가 뛰어들었다.스내플의 인기는 사그러들었고 지난해 매출은 5억5천만달러로 2년전 인수때보다 오히려 감소했다.퀘이커오츠가 스내플을 인수했을 때는 이미 브랜드 이미지가 퇴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퀘이커오츠의 경영상 실수도 빠뜨릴 수 없다.대형슈퍼마켓을 주로 상대해온 퀘이커오츠의 마케팅기술은 스내플이 잘 팔리는 편의점.주유소등에는 통하지 않아 이들을 상대하는 중간도매상들과 자주 마찰을 일으켰다.

결국 지난 3월27일 스내플을 미스틱과 RC콜라로 알려져 있는 트리악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대금은 3억달러.2년만에 14억달러를 날린 셈이다.지난해 총매출 52억달러와 비교하면 스내플로 인한 타격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4월23일 스미스버그는 따가운 눈총을 의식한듯 사의를 표명했다.퀘이커오츠에 헌신한 30년이 허무하게 끝나는 순간이었다.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M&A를 시도할 때는 시너지등 그럴 듯한 포장을 하게 마련이지만 기대한 효과를 얻기는 쉽지 않다.AT&T가 NCR(컴퓨터)를,소니가 컬럼비아 영화사를,마쓰시타가 MCA(영화사)를,GM이 내셔널 렌트카를 합병했다가 손들고 말았다.

퀘이커오츠의 스내플 인수는 90년대 일어난 M&A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기록될 것이다.제품 자체로는 시장을 영원히 장악할 수 없다는 교훈을 비싸게 배운 셈이다.세계화,고객의 변덕,벤처캐피털의 활약,정보전달의 신속성등으로 기술혁신에 의한 과실(果實)을 혼자서 영원히 즐길 수 없는 세상이다.지속적으로 고객의 관심을 파악해 충족시키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권성철 전문위원

<사진설명>

눈물을 흘리고 있는 퀘이커오츠.미국의 한 잡지는 스내플 인수로 참담한 실패를 맛본 퀘이커오츠의 상표에 눈물을 그려넣는 익살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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