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레이건 후광' 덕 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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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최근 이라크 사태로 지지도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따라서 올 가을 대통령 선거전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부시 대통령 측이 지난 6일 타계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덕을 볼 수 있을까?

외신은 공화당이 '레이건' 상표를 발 빠르게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 진영은 선거운동 사이트를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추모사를 중심으로 개편했다.


굿바이! 레이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7일 시미밸리의 118번 로널드 레이건 고속도로를 지나가자 이 지역 소방수들이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左). 이날 레이건 전 대통령의 시신이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도서관에 안치된 뒤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딸 페티 데이비스가 낸시 레이건 여사의 손을 잡고 앉아있다. [시미밸리 AP=연합]

일부 참모들은 레이건에 대한 집중 조명이 부시와 레이건의 닮은 점을 드러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시 진영은 "레이건도 부시처럼 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세금 감면정책을 추진했으며, 부시가 이라크 등 '악의 축'과 싸우는 것은 레이건이 당시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르며 강하게 맞섰던 것과 통한다"고 강조한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5일 "부시 대통령이 직설적인 화법, 진실과 자유에 대한 명백한 의지 등 레이건이 보여준 덕목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섣불리 레이건의 후광에 기대는 게 위험하다는 진단도 있다.

일부 공화당원들은 지난 6일 TV에서 1984년 레이건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연설을 하는 장면에 이어 부시 대통령의 이번 연설장면을 내보낸 것은 강성 레이건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시의 모습을 초라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또 레이건과의 연관성은 자칫 부시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이미지만 강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게다가 미망인이 된 낸시 레이건을 선거유세에 적극 활용할 경우 줄기세포 복제에 대한 낸시와 부시의 의견충돌만 더 불거져 보이게 할 염려도 있다.

낸시는 알츠하이머병 치료법 개발을 위한 줄기세포 복제연구를 옹호해 왔다. 레이건이 알츠하이머병을 앓았기 때문이다.

존 케리 민주당 후보 진영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레이건을 칭송하되 부시와 다른 점을 부각하는 전술을 택했다.

케리 의원은 6일 "레이건은 강한 신념과 증오에 찬 당파주의의 차이를 가르쳐 줬다"며 부시 정부를 비꼬았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미국 진보를 위한 센터'(CAP)도 "레이건은 세금을 감면한 만큼 올리기도 했고, 기회가 닿았을 땐 소련과 군축협정도 맺었으며, 유럽과의 동맹도 잘 유지했다"며 "레이건 성공의 비결은 정책이 제대로 안 될 때를 알아차리고 방향을 전환하는 능력"이라고 지적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모두 레이건이 사망한 뒤 며칠간 선거운동을 보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상대방 후보가 레이건에 대해 비판했던 과거를 들춰내는 등 양측의 물밑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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