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는 새로운 활화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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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후 심청’

▶ ‘마리이야기’

▶ 주상영관인 봉뉴센터 내부. 지붕 부근에 페스티벌 마스코트인 흰토끼가 태극기를 들고 있다. [정형모 기자]

프랑스 남쪽 호반의 작은 도시 안시(Annecy)가 '한류(韓流)'물결에 잠겼다. 한국 애니메이션 때문이다. 알프스 산맥 끝자락, 90여만평의 광활한 호수에 접한 인구 5만의 평화로운 이 소도시는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개막된 지난 7일부터 각국에서 찾은 6000여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의 웃음과 이야기로 들썩거렸다.

'애니메이션의 칸 영화제'라는 수식이 과장이 아니었다. 28회째를 맞은 올해는 '한국특별전'이 열려 관심을 더했다. 2002년 이성강 감독의 장편 '마리이야기'가 이 대회 그랑프리를 차지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을 대하는 시선이 크게 바뀌었다.

페스티벌 총감독 세르주 부롬베르는 "과거 다른 나라의 하청 일만 하던 한국이 이제 창작물을 봇물처럼 내놓기 시작했다"며 "마치 새롭게 분출하기 시작한 활화산 같다"고 말했다. 조직위원회는 소식지 1호의 표지 전체를 김문생 감독의 '원더풀 데이즈'로 깔면서 한글로 '한국 만화영화에 표하는 경의'라고 제목을 달았다.

안시 페스티벌에서 그동안 '특별전'이 열린 나라는 일본.영국.체코.호주뿐이다. 이번 한국 특별전에서는 '망치'(감독 안태근), '왕후 심청'(감독 넬슨 신) 등 장편 5편과 '존재' 등 단편 47편으로 총 52편이 상영됐다. 이와 별도로 경쟁에도 장편부문에 '오세암'(감독 성백엽)이, 단편부문에 '에그콜라'등 10편을 출품했다.

7일 오후 8시30분 메인상영관인 봉뉴센터 대극장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이 한국어와 프랑스어로 개회를 알리자 11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당초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개회 선언을 하기로 돼 있었으나 안시 측의 배려로 이 시장이 하게 됐다.

오후 10시15분부터 호숫가 잔디마당에 설치된 '자이언트 스크린'에서는 '마리이야기'가 프랑스어 더빙으로 상영됐다. 1000여평의 잔디밭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친다는 프랑수아 그보스폰은 "2년 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그림이 정말 아름다워 다시 보러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에는 봉뉴센터 2층에서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이용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재를 보여주는 전시회가 '정글 D(디지털)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파리의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휴가를 내 페스티벌을 찾았다는 엘로디 테리어는 "휴대전화로 애니메이션을 보기는 처음"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심상기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조직위원장은 "영화에 이어 애니메이션도 한국이 문화 생산국의 자리에 올랐음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서울시와 문화관광부.영화진흥위원회.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지난해 말부터 업무를 나눠 추진해 왔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홍보물과 통역요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영어 책자만 제작하는 바람에 영어가 서툰 프랑스인들에게 제대로 알릴 기회를 놓쳤다. 그나마도 700부밖에 찍지 않았다. 통역요원도 안시 측이 뽑은 유학생 2명을 포함해 5명이 전부였다.

역시 '한국 특별전'이 열렸던 지난해 1월의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이 '한국만화대표선'이라는 프랑스어 책자를 넉넉하게 만들고 유학생 통역요원만 20여명이나 확보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안시에서 10년 안에 다시 '한국특별전'을 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하면 한국 측의 보다 충실한 준비가 아쉬웠다.

안시(프랑스)=정형모 기자

*** 안시 애니 페스티벌은

1956년 칸 영화제에 신설된 비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경쟁 애니메이션 부문을 60년 소도시 안시에서 가져와 독립된 페스티벌로 키워냈다. 올해로 44년, 횟수로 28회째인 안시 페스티벌은 당초 홀수 연도에 열렸으나 98년부터 매년 열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85년부터는 애니메이션을 사고 파는 시장(MIFA)도 생겨 14회째를 맞았다.

안시 페스티벌은 국제애니메이션필름협회(ASIFA)가 인정하는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안시.오타와.자그레브.히로시마) 중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 작품 진출은 1994년 이용배 감독(현 계원조형예술대 교수)의 단편 '와불'을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본선에서 상영된 한국 작품은 장.단편 합쳐 2001년 7편, 2002년 5편, 2003년 13편이었으며, 올해는 11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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