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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관타나모에서 닻 올린 미국의 스마트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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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틀째인 22일 쿠바 관타나모 기지 내 테러용의자 수감시설 폐쇄를 명령했다. 취임 후 첫 조치로 관타나모 수감자에 대한 재판을 120일간 중단할 것을 지시한 오바마 대통령은 향후 1년 내 관타나모 내 수감시설과 국외 중앙정보국(CIA) 수감시설의 폐쇄를 명령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아울러 육군 실무 매뉴얼에 규정된 19가지 신문(訊問) 방법 이외의 강제적 신문 방법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사실상 고문을 금지한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인권 유린 논란을 빚어온 이전 정부와 확실하게 선을 긋고,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바로 세우는 첫 조치를 취한 것이다.

9·11 테러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41개국 출신 558명의 테러 용의자가 적법한 사법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관타나모 수감시설로 이송됐다. 지금도 245명이 남아 있다. 주황색 수의(囚衣)를 입고, 가죽 족쇄를 찬 관타나모 수감자들은 인권과 민주주의, 도덕성이라는 미국의 가치를 부정하는 상징물로 여겨져 왔다. 미 CIA는 고문을 금지한 국제법과 국내법적 제약을 피하면서 신문의 편의를 위해 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에 비밀 수감시설을 운영해 왔다. 이들 시설이 폐쇄될 경우 수감자들을 당장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현실적 난제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공약대로 관타나모와 CIA의 국외 수감시설 폐쇄를 명령한 것은 미국의 변화 의지를 대변한 올바른 선택이라고 본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취임식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힘이 군사력이나 부(富)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의 가치에서도 나온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마트 파워’에서 미국의 힘이 나온다는 것이다. 클린턴 장관도 “스마트 파워로 미국 외교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장관의 신념이 구체화한 첫 조치가 관타나모 수감시설 폐쇄라고 보고, 이를 전적으로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