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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열도 휩쓴 소설 '실낙원' 영화로도 대히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실낙원(失樂園) 신드롬'이 일본열도에 퍼지고 있다.'실낙원'은 95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연재된 와타나베 준이치(渡邊淳一.64)의 소설. 출세가도를 달리다 한직(閑職)으로 밀려난 50대 출판사 간부와 미모의 30대 의사 부인간의 불륜을 그린 이 소설은 연재 당시부터 화제를 모으더니 지난 2월 고단샤(講談社)에서 상.하권으로 출간되자마자 불티나듯 팔려나가 벌써 판매부수 2백만부 이상의 베스트셀러가 됐다.도에이(東映)가 영화화한'실낙원'에도 연일 관객이 몰려들어 개봉 20일만에 관객동원 90만명을 돌파했다.대히트의 기준을 영화배급 수익 10억엔(약 70억원)으로 잡고 있는 일본 영화계에서'실낙원'은 이미 15억엔 이상의 수익을 올려 오랜만에'방화(邦畵)'의 자존심을 지켰다.

이 소설은 정신적 불륜을 육체적 불륜으로는 연결시키지 않았던 한국의 드라마'애인'과는 다르다.며칠동안 정신적.육체적 사랑을 불태우다 제자리로 돌아간'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도 물론 다르다.의사출신 작가 와타나베는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죽음(동반자살)으로 처리하는'일본적'인 탐미(耽美)주의를 이 소설에서 보여줬다.

소설'실낙원'의 영화화가 성공하면서 TV.라디오까지 가세하고 있으며,관광업계는'실낙원'에 등장하는'불륜의 장소'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등 발빠른 상혼(商魂)을 보이고 있다.JR요코스카(橫須賀)선의 그린열차를 타고 가마쿠라(鎌倉)프린스호텔에서 1박하고 저녁식사는 전복스테이크를 먹는 소설속 주인공들의'불륜의 코스'를 따라가는 단체관광이다.술집에서는'실낙원'에 등장하는 남녀주인공 구키와 린코가 불륜의 장소에서 마셨던 적포도주'샤토 마르고'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미용실에선“린코 모양으로 해달라”는 주문까지 나올 정도다.불륜을 주제로 한 하고많은 소설 가운데 유독'실낙원'이 사회현상화할 정도로 붐을 일으키는 이유를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단순한 쾌락 위주의 불륜소설과는 달리'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복고풍의 테마는'순애보(殉愛譜)'를 맛보기 힘든 현대인의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세기말에 나온 저속한'간통소설'이란 악평도 있다.

'실낙원 신드롬'을 경제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이 소설이 버블경기 붕괴.리스트럭처링.불황.관료부패등 꽉 막힌 오늘날 일본의 분위기와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시대와 함께 호흡해야 하는데,출세가도에서 떠밀려난 쓸쓸한 50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주효했다는 것.사회적인 지위.부.명예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남편을 두었으면서도 심연에서 꿈틀거리는 사랑의 욕망을 못이겨 파괴적인 에로티시즘으로 흐르게 된 린코에 대해서도 많은 독자들이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도쿄=김국진 특파원

<사진설명>

영화'실낙원'을 상영중인 도쿄의 한 영화관.이 영화는 개봉 20일만에 9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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