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충한 사회분위기와 맞물려 TV 공포물 '봇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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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공포심은 그 자체로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보고싶은 마음과 보고 싶지 않은 마음.괴성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눈을 뜨고 보는 모습만큼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것도 없다.무엇이 감았던 눈을 다시 뜨게 하는가.전설.문학.영화등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갖춰온 이'무섭게 하기의 중독성'을 방송이 놓칠리 없다.

MBC'다큐멘터리-이야기속으로'는 최근의 화제 프로그램중 하나다.시청자들의 세가지 체험담으로 구성되는 이 프로그램은 특히 무서운 이야기가 한편 이상 등장해 심야시간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특히 거의 매번 등장하는 귀신이야기는'비과학적 생활태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측의 시정요청과 방송위원회의 징계를 받았고 이에 반발하는 제작진과의 충돌이 방송가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21세기를 앞둔 요즘 귀신 이야기가 새삼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비교문학가 안병국(50)씨는 저서 '귀신설화연구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무의식적 사고를 통해 귀신을 빚어내는 것은 억울한 죽음에 대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보상행위다.착한 사람에겐 복이,나쁜 사람에겐 벌이 주어지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다.그러나 못된 사회에서는 신상필벌이 거꾸로 되고 가치는 전도된다.그 결과 사람들 마음에 맺힌 울분으로 귀신을 빚게 되고 이 귀신을 통해 울분을 대행한다.” 그렇다면 썩은'고름'이 터져나오고 있는 뒤숭숭한 우리 사회야말로 귀신이 출현하기 딱 좋은 곳 아닌가.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올 여름에는 TV속 귀신이 한층 기승을 부릴 예정이다.

89년 막을 내린지 7년만인 지난해 부활돼 큰 인기를 모았던 KBS'전설의 고향'이 올해에도 인기몰이를 다짐하고 있고 SBS도'토요미스터리'란 심야고정물을 14일부터 내보낸다.

7월7일부터 8월26일까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열여섯번에 걸쳐 시청자들을 찾아갈 97전설의 고향은 현재 7명의 PD와 6명의 작가들이 투입돼 촬영이 한창이다.

SBS의 토요미스터리는 전설의 고향과 이야기속으로의 형식을 합친 미스터리 오락물로 체험담을 소재로 할 예정이다.연극배우 전무송과 탤런트 유하영이 진행을 맡게된다.

하지만 우리 방송의 공포물은 단순한 귀신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공포물에도 여러가지 소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흡혈귀나 악령.괴물.시체들 외에도▶이상심리 소유자의 광기('케이프 피어''요람을 흔드는 손')▶동물('새''조스')▶다중인격('사이코''양들의 침묵')▶변신(''울프''플라이')등으로 다양한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소설가 스티븐 킹(49)의 경우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긴박한 심리묘사로 포장,공포물의 대가로 불린다.

귀신에만 의존해 말초신경만 자극하기보다 치열한 심리싸움을 하는 미스터리같은,보고싶지 않아도 기어코 보게 만드는 정통 공포물을 우리 시청자들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정형모 기자

<사진설명>

KBS 슈퍼탤런트 출신 송윤아가 7월7일부터 방영되는'전설의 고향'에서 특수분장을 거쳐 구미호로 변신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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