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진상 규명 먼저 하는 게 당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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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재개발 농성자 사망사건에 대한 여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22일 브리핑에서 “참극이 빚어졌는데 그게 역사의 교훈이 되려면 무엇이 원인이고 잘못이었는지 진상 규명이 먼저 되는 게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선(先) 진상 규명 입장을 재차 밝힌 것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와 시시비비가 가려지기 전엔 경찰청장 후보자인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거취에 대해 거론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한 것이다.

청와대가 신중론을 앞세우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선 이번 사건의 성격 때문이다. 여권 내에선 “경찰 진압이 전문 시위꾼들의 폭력 시위에 대한 정당한 법 집행”이란 공감대가 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경우 민간인 희생자 5명 중에 3명이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소속이었다. 또 수사 과정에서 이들이 철거민들에게 망루 짓는 법을 알려주는 등 강경 시위를 주도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 때문에 합법적으로 법 집행을 한 김 청장에게 책임을 묻기는 곤란한 게 아니냐는 게 여권의 판단이다. “김 청장이 잘못한 게 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경찰이 시위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자칫 여론에 밀려 성급하게 문책을 앞세울 경우 공권력 바로세우기를 강조해온 정부의 의지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2005년 시위 도중 농민이 숨진 사건으로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이 물러나게 되자 경찰이 시위 진압 등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해보면 과잉진압보다 폭력시위를 탓하는 답변이 더 많다”는 말을 했다.

◆김 청장 청문회 요청은 연기될 듯=이런 기류는 23일 국회로 보내지는 신임 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서 작성에도 반영됐다. 한나라당 주호영 원내 수석부대표는 “김 청장의 것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우선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와 김 청장의 청문회 요청서는 천천히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청장의 경우 검찰 수사를 지켜보며 좀 더 시간을 두고 판단해 보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선 조기 수습론이 나오기도 한다. 박희태 대표는 “설 민심이 전국적으로 매우 급하게, 아주 진하게 확산되고 정착될 가능성이 있다”며 “본격적으로 설이 시작되기 전에 관계 당국에서 현재까지 밝혀진 진상을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경찰·군에 대해선 정치적 책임, 지휘 책임을 함부로 물어선 안 된다”(송광호 최고위원)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민심이 교차하는 설 연휴의 여론 동향과 김 청장의 거취가 맞물릴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찰 "현 체제로 간다”=한편 경찰은 22일 전국의 지방경찰청에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체제에 변화가 없다”는 연락을 했다. 임재식 경찰청 차장은 이날 지방청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체제로 간다”는 말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정애·선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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