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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가장 내밀한 곳’ 내일부터 개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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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경복궁의 가장 내밀한 곳, 후원 일대의 전각이 열린다. 모두 고종(재위1863~1907)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새로 지었던 건물이다.

문화재청은 태원전, 함화당·집경당과 건청궁 등 주요 전각 3곳을 24일부터 전면 개방하기로 했다. 1990년부터 시작된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이 광화문을 제외하곤 모두 완료돼 일반에 공개되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전면 개방에 앞서 22일 현장을 공개했다.

복원 후 첫 일반 공개하는 태원전 일대. 고종 5년(1868년) 건립됐다. 태원전 본전과 영사재·숙문당·공묵재 등 모두 25채를 복원했다. [최승식 기자]


◆후원의 제례공간, 태원전=이번에 개방하는 3곳의 전각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경복궁 북서쪽에 자리잡은 태원전이다. 태원전은 고종 5년(1868년) 건립된 후 주로 제례 공간으로 사용됐다. 처음엔 태조 이성계의 어진 등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진전으로 시작했다. 고종 27년(1890년)엔 신정왕후(조대비)의 빈전으로 쓰였다. 빈전은 재궁(왕이나 왕후의 시신을 안치하는 관을 높여 부르는 말)을 모시는 장례 공간이다. 고종 28년(1891년) 각국 공사 접견실로 사용한 기록도 있다. 고종 32년(1895년) 명성황후의 재궁을 모시는 빈전으로 쓰인 뒤로는 사료에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빈전에선 보통 5개월상을 치르게 되어 있지만, 일본 자객에게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경우엔 빈전에서만 9개월을 머물렀다.

◆고종의 일터 함화당·집경당=고종은 정세에 따라 경복궁 내에서도 거처를 여러 번 옮겼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한 건청궁은 고종 22년(1885년)부터 고종 32년(1895년)까지 주요 거처 공간으로 사용됐다. 함화당·집경당은 그 기간 중인 고종 27년(1890년)에 건청궁과 멀지 않은 곳에 지어 정사를 보고 외국 공사를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이곳은 태원전처럼 철거된 건물을 복원한 게 아니라 남아 있는 기존 건물을 보수하고 행각(주변 건물) 7동만 새로 지었다. 일제 시대에 조선총독부 박물관 사무실로 이용되는 바람에 철거되지 않고 남아있었던 것이다. 행각 자리에는 한때 경복궁 매점이 있었다. 복원은 지난해 12월 끝났다. 복원 기간 3년 동안 64억원이 투입됐다.

건청궁은 지난 2006년 복원을 마치고 2007년 10월부터 1일 3회 총 60명으로 관람객을 제한해왔지만 이번에 전면 개방된다. 문화재청은 화재·방화에 대비해 주·야간 전담 경비 인력을 배치한다. 위험물품 반입을 막기 위해 소지품 검사도 이뤄진다. 관람료는 종전대로 3000원이다.

이경희 기자 , 사진=최승식 기자

◆태원전 복원=경복궁의 상당 부분이 헐렸던 일제 강점기에 태원전 역시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태원전권역에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때 출동한 30사단 1개 대대 병력이 눌러앉아 군부대로 쓰이기도 했다. 93년에야 군부대 이전이 결정돼 복원에 들어갔다. 2001년 시작된 복원 사업은 2005년 말 끝났지만 조경을 정비하느라 지금까지 개방이 보류됐다. 복원에는 총 290억 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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