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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유럽은 어디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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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유럽이 흔들리고 있다.냉전종식 이후 유럽은 지역통합을 가속화하면서 1999년 1월1일까지 단일통화'유러(Euro)'를 내놓기로 합의했다.만일 마스트리히트 조약대로 유럽이 강력한 단일통화를 내놓는데 성공한다면 세계경제는 달러.엔.유러 3대 통화가 주도하게 되고 한국경제도 상당한 도전을 받게 된다.

그런데 최근 유럽 정세를 보면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성공 가능성이 매우 불안하게 보인다.왜냐하면 유럽통합의 양대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독일.프랑스 국민들이 유럽통합을 위해 필요한 경제적 희생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이 강력한 단일통화를 내놓으려면 단일통화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통화가 튼튼해야 한다.그래서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유럽 회원국가들이 긴축해서라도 재정균형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이러한 요구를 엄격히 준수할 것을 가장 강력히 주장한 나라가 독일이다.그런데 바로 그런 독일이 지금 재정균형의 정도(正道)를 벗어나 파행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통일비용 때문에 상당한 재정적자 요인이 발생했다.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정신대로 한다면 독일국민은 사회복지를 줄이든지,세금을 더 내든지 하는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그러나 독일국민은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기를 거부하고 있다.최근에 콜총리가 독일중앙은행의 보유 금을 재평가함으로써 거기서 나오는 잉여자금으로 재정적자를 메우겠다는 결정을 하게 된 것도 바로 그가 독일 국민의 마음을 읽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콜의 정치적 감각은 경제적으로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우선 독일중앙은행의 독립을 훼손시킬 수 있는 문제가 있다.특히 1999년부터 유러를 관리하는 유럽중앙은행이 탄생하는데 독일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양해돼 있고 원래 독일연방은행을 모델로 삼아 어떤 정치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경제원리에 따라 자주적으로 운영될 것으로 기대돼 왔다.그러나 콜총리의 최근 결정으로 독일연방은행의 독립이 위협받게 됐고 유럽중앙은행은 탄생하기도 전에 그 신용도에 문제가 생기게 됐다.

여기에 더해 프랑스에서는 사회당이 주도하는 좌파연합이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다.물론 얼마전 영국총선에서도 좌파를 상징하는 노동당이

승리한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프랑스의 사회당과 영국의 노동당은

근본적으로 다르다.영국 노동당은 세계화 흐름을 받아들이고 경쟁적인

시장경제를 적극 끌어안음으로써 그야말로 진보적인 개혁세력으로 탈바꿈한

정당이다.

프랑스 사회당은 이와 대조적으로 세계화가 의미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시장경제의 경쟁을 제한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실업자문제를 노동시장의 자유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직된 정부 주도의 복지정책으로 환원하려 한다.물론 그 결과는

프랑스경제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프랑스국민은 세계화의 도전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다.사회당의 승리는

역사적으로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후퇴를 뜻한다.20년전의 스웨덴식

복지국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그리고 프랑스경제의 후퇴는 유럽의 통합

전망에 어두운 먹구름을 씌우고 있다.사회주의 정부는 긴축의 아픔을 피하기

위해 자제력 없는 통화정책을 택함으로써 유럽의 단일통화에 물을 타는 격이

됐다.

물론 이제라도 유럽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꿈을 되살릴 수 있다.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유럽의 국민들 스스로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이익을 희생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그리고 그것은 모든 자유로운 국가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 만일 유럽이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꿈을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실현하지 못한다면 세계 질서는 미국.일본.유럽의 3각체제가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보조역할을 하는 체제로 정착될 수 있다.

우리는 최근 너무도 많은 심각한 문제들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유럽의

미래문제는 상아탑에서 논하는 극히 추상적인 문제로 보일는지

모른다.그러나 유럽의 장래문제는 우리 정부의 외교전략에도 지극히 중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들의 세계 투자및 마케팅 전략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김경원 사회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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