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촛불’ 긴장하는 청와대·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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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는 초반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다 회의 도중 철거민 사망 소식이 보고되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는 전언이다. 이후 한승수 국무총리가 관계 장관들에게 “경찰이 사건 당사자인 만큼 조사본부는 검찰에 설치하는 게 좋겠다” “용산구 차원에서 사고대책반을 운영하지 말고 서울시에서 직접 담당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20일 서울 도렴동 정부 중앙청사 별관에서 용산 재개발지역 주민 사망사건과 관련해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무회의 뒤 정동기 민정수석은 청와대 본관의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동의 본인 사무실을 수차례 오가며 상황을 실시간으로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대통령은 오후 대통령 관저로 퇴근한 뒤 TV의 8시·9시 메인 뉴스를 꼼꼼히 챙겨봤다고 한다.

청와대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 정부의 대응도 발 빠르게 진행됐다. 국무회의 직후 정부 중앙청사에선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주재로 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 직후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국무회의가 끝난 뒤 지방출장을 갔던 한 총리도 서둘러 상경해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는 입장 표명은 과거 다른 사건들과 비교할 때 발 빠른 대응이었다.

일각에서 김석기 경찰청장 후보자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청와대는 “사태를 파악하고 수습하는 게 먼저이고 인사 조치는 나중 문제”라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청와대는 아직까지 ‘과잉진압 문책’보다 ‘불법시위의 위험성’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핵심 관계자는 “현재까지의 조사로는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다곤 보기 힘들다”며 “경찰청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인사 문제를 다시 고민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총리가 발표문에서 “불법 폭력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어느 누구에 의한 것이라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청와대 일각에선 “누군가는 결국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논란이 증폭되고 이 대통령의 부담이 커질 경우 김 청장 후보자의 거취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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