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재개발 참사] 쟁점1. 피해 왜 커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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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너가 재앙 불러=사건이 발생한 20일, 오전 4시가 되자 크레인이 건물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오전 5시엔 컨테이너 2개와 4대의 살수차가 건물 주변에 배치됐다. 맞은편 건물 옥상에도 병력이 올라갔다. 오전 6시 경찰이 “자진 해산하지 않으면 검거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했다. 15분 후 살수차가 건물을 둘러싸고 농성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점거 농성 25시간 만의 진압이었다. 2005년 경기도 오산 세교 택지개발지구 농성 때는 59일 만에 해산시켰다.

농성자들은 망루로 올라가 배수진을 쳤다. 6시30분쯤 1층에 있던 경찰 병력이 장애물을 뜯고 진입을 시도했다. 계단에서 시위대와 경찰 간에 육박전이 벌어졌다. 이때 다리를 다쳐 병원 치료를 받은 석영락(30) 특공대원은 “들어갈 때 이미 시너·휘발유·세녹스 등을 잔뜩 뿌려놔서 냄새가 진동했다”고 말했다.

오전 6시45분 기중기를 동원해 특공대원들을 실은 컨테이너를 옥상으로 끌어올렸다. 대원들은 컨테이너에서 물을 뿌리며 진압작전을 펼쳤다. 농성자들은 화염병을 던지며 맞섰다. 10분 뒤 두 번째 컨테이너가 옥상에 올라갔고 진압도 본격화됐다. 농성자 10여 명은 특공대에게 끌려 계단으로 내려왔다.

오전 7시10분, 경찰이 망루 진입을 시도하자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졌다. 망루 주위에 불이 붙었다. 특공대원들이 소화기로 불을 끈 뒤 재진입을 시도했다. 오전 7시26분 특공대원들이 3단으로 이뤄진 망루의 1단까지 올라갔다. 망루 위에 있던 시위대가 또다시 화염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화염병의 불꽃은 시너를 타고 화염으로 변했고 순식간에 망루 아래 쌓여 있던 70여 개의 시너통에 옮겨 붙었다. 화염은 시너를 타고 아래층까지 흘러내렸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용산 철거민대책위(철대위) 회원은 “가건물 안 바닥에는 화염병을 만들 때 옮겨 담다 흐른 기름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며 “일단 올라갈 때 거기서 6개월을 버틴다는 생각으로 갔기 때문에 겨울을 나기 위해 준비한 연료”라고 말했다.

건물 전체가 인화물 범벅이 돼 있었기 때문에 화염은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퍼졌다. 사망자들은 미처 도망갈 시간도 확보하지 못한 채 불길에 휩싸였다. 현장을 목격한 시민 장동규(40)씨는 “펑 하는 굉음과 함께 건물 옥상에서 화염이 치솟았고 순식간에 3, 4층까지 불길이 번졌다”고 말했다. 철대위 측은 “4층에 있던 철거민 한 명이 불길을 피해 난간에 매달려 있다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망루는 오전 7시45분 완전히 불에 타 무너졌다. 화재로 일시 후퇴했던 특공대는 다시 진입해 농성자 검거에 들어갔다. 오전 8시에 불은 완전히 꺼졌다. 20분 후엔 시위대 진압도 완료됐다. 그러곤 망루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 불에 탄 6구의 시체가 발견됐다. 화염병과 시너·물대포가 뒤엉킨 참사는 이렇게 끝이 났다. “경찰이 좀 더 유연하게 대처를 했으면 좋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너 등 인화물질이 있음에도 유류화재에 대비한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살수차의 물로는 시너로 인한 불을 효과적으로 진화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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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형·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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