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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독서토론회와 수다 사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지난해 3월에 나온 소설가 공지영씨의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가 새해 들어 베스트셀러 순위 10위권에 재진입했다. 출간 후 9개월 동안 35만 부가 팔렸는데, 최근 3주간에만 5만 부가 더 나갔다. 이유가 있다. MBC ‘명랑히어로’의 2부 코너인 ‘명랑독서토론회’에서 방송인 현영이 이 책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명랑독서토론회’는 연예인이 책 한 권을 추천하고 1, 2주에 걸쳐 MC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 ‘마법’은 이 책에서만 그친 게 아니다. 10일과 17일 두 번 전파를 탄 방송작가 출신 김동영씨의 여행에세이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는 19일 교보문고 일일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2007년 9월 출간 이후 방송 전까지 이 책의 판매량은 1만5000부가량. 방송 후 하루 동안 출판사에 들어온 주문량은 5000부나 됐다.

이 코너가 내건 ‘명랑한 책이 지구를 움직인다’는 표어처럼, ‘명랑독서토론회’의 힘이 독자를 움직인 것이다. 지상파 방송에서 책을 정식으로 다루는 교양프로 하나 없는 현실에서, 토요일 밤 예능 프로에서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건 시청자로선 반가운 일이다.

공지영 산문집을 낸 양상호 ‘오픈하우스’ 대표는 “이 프로를 통해 사람들이 책이 심각한 학습의 도구만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의 도구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동의하는 바다. 스타의 추천이라는 선정방식도 예능프로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납득 못 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명랑독서토론회’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지상파 방송에서 책을 소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던 시절은 전국민적 독서붐을 일으켰던 MBC ‘!느낌표-책책책 책을 읽읍시다’(2001년)로 끝났다. 무엇보다 책을 다루는 방식부터 진화해야 한다. 시청자 게시판을 보면 “책 얘기에 좀 더 집중해 달라”는 의견이 다수다. 책을 매개로 한 토크쇼에 대한 당연한 요구지만, 번번이 무시된다. MC 4명에 게스트 1∼2명이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경쟁적으로 한 번씩 발언한다. 그것도 책에 대한 감상보다는 말꼬리 잡기나 신변잡기다. 배우 이영은이 추천자로 나온 10일 방송분은 대부분의 시간이 이경규와 있었던 해프닝 얘기에 소비됐다.

“독서토론회가 아니라 (출연자들의 독설과 신변잡기 위주인) ‘라디오스타’ 2편을 보는 것 같다”는 몇몇 시청자의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17일 방송에서 MC 김구라는 T자 모양 수영복과 커밍아웃한 동료 연예인 홍석천을 연결시키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재담과 책 얘기를 절묘하게 혼합하는 ‘황금비율’에 대해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책을 추천한 연예인들도, 토크에 참여한 MC들도 자신들이 다룬 책이 시장에서 이렇게 큰 파급력을 가져올지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게 전파의 위력이다. 동시에, 출연자와 제작진이 가져야 할 책임감의 무게이기도 하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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