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그림, 행복한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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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김주영씨의 소설 ‘홍어’를 그린 이두식씨의 그림.

▶ 황석영씨의 소설 ‘삼포 가는 길’을 그린 민정기씨의 그림.

우리 시대가 손꼽는 소설가 다섯명이 화단에서 내로라하는 화가 다섯명과 짝을 지었다. 박완서-박항률, 최인호-김점선, 황석영-민정기, 이청준-김선두, 김주영-이두식 다섯 쌍이 만났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화가는 소설을 읽고 그림을 그렸고 소설가는 그림을 보고 글을 썼다. 문학과 미술이 접붙어 새로운 창작을 잉태했다.

14일부터 서울 교보문고 강남점 문화이벤트홀에서 막을 올리는 '그림, 소설을 읽다'전은 이들 열명 화가와 소설가가 기껍게 서로의 영혼을 내주고 보듬은 만남의 결과를 선보이는 자리다. 평론가가 뽑아낸 소설가의 대표작과 명문장 스무 대목씩이 그림으로 나오고, 작가의 책과 화가의 도록 등 두 사람에 대한 모든 자료가 함께 전시된다. 이들 그림과 글이 랜덤하우스중앙에서 꾸려져 개막일에 출간되는 일도 뜻깊다.

한 쌍이 일주일씩 오는 10월 초까지 넉 달에 걸친 대장정을 이어갈 이 특별전은 '문학과 문화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문학사랑)'이 중매를 섰다. 2002년 3월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를 중심으로 뭉친 '문학사랑'은 순수 예술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을 깨보려 여러 활동을 펴왔다. 회장을 맡고 있는 소설가 김주영씨는 "책으로만 존재하던 소설을 그림으로 풀어내 서로가 감싸 안은 첫 시도"라며 "소설도 그림도 새로 태어나 상생하며 빛을 발해 대중에게 재음미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7일 오후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모여 '그림, 소설을 읽다'전을 설명하는 작가들은 설렘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덕담을 나누었다. 황해도 개성이 고향인 화가 김점선씨는 동향 대선배이자 가깝게 지내는 소설가 박완서씨 작품을 하고 싶었지만 친구의 남편인 소설가 최인호씨에게 일찌감치 점지당한 사연을 털어놓으며 "여자끼리보다 남녀 쌍이 더 좋다는 데 두 손 들었다"고 했다.

화가 민정기씨는 "소설가 황석영 형의 소설과 나의 그림의 인연이 꽤 오래되었다"고 입을 열었다. 1980년대 '현실과 발언'동인에서 활동할 때 황씨의 '한씨 연대기'를 동판화 13점으로 제작했던 민씨는 "그 일이 연이 돼 석영 형의 신문 연재소설 '오래된 정원'과 '손님'의 삽화를 맡아 호흡을 맞춰왔다"고 특별한 사이를 자랑했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황씨는 '그림이 떠올라야 소설을 쓴다'는 작가의 말에서 "민정기씨는 그냥 삽화가 아니라 누구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아련함을 그려냈다"고 짝을 추어주었다.

함께 맞들어 제2의 창작을 생산한 소설가와 화가는 전시 기간 중 토요일마다 전시장에 나와 자신들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02-397-3433.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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