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방미, 돌연 뉴욕으로 떠난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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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200억 부동산 부자로 유명해진 가수 방미가 10개월 전 돌연 뉴욕으로 떠났다. 지난 12월 초 오랜만에 뉴욕에서 그녀를 만났던 날, 뜻밖의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액세서리 사업을 하며 바쁘게 지내는 뉴요커로서의 일상과 오랫동안 교제해온 남자친구 이야기까지, 꽁꽁 감춰뒀던 그녀의 비밀 이야기. 취재.사진_민은실 기자 가수 방미, 돌연 뉴욕으로 떠난 사연 200억 부 동산 부자 미국 현지 인터뷰

371 뉴욕의 초겨울은 제법 쌀쌀했다. 맨해튼 37가 에서 만난 그녀는 벨벳 드레스에 숄을 두르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도 환하게 웃어 보였 다. 전보다 체중은 빠진 듯했고, 표정은 한결 밝아 보였다. 뉴욕 생활이 체질에 맞는 것 같 았다. 이제는 인생의 안정과 정착을 찾아야 할 나이인데도 왜 돌연 뉴욕으로 떠난걸까.

“뉴욕의 익명성과 자유로움이 좋아요. 한국에 서 걸어 다니다 보면 뒤에서 들려오는 수군거 림에 식은땀이 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탱 크 톱에 반바지 입고 다녀도 뭐라고 안 해요. 이런 당당한 자유로움이 좋아요(웃음).”

뉴욕은 그녀에게 친숙한 도시이다. 이모네가 뉴욕에 살고 있어 20대 시절에도 몇번 머물렀 던 적이 있다. 당시 뉴욕 중심부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했던 이모네가 돈을 긁어 모으는 것을 보고 뉴욕에서의 삶을 꿈꿨다는 그녀. 1993년 발표한『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앨범을 끝 으로 연예계 활동을 일단락 지은 뒤 뉴욕을 다 시 찾았던 그녀.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뉴욕에서도 부동산 실전 투자를 하기도 했다.

8년 전 맨해튼 웨스트사이드 트럼프플레이스 콘도를 37만 달러에 사서 2년 후 85만 달러에 팔기도 했다. 48만 달러가 수중에 남았다. 그녀는 수십 차례의 부동산 투자로 결국 200 억 부자라는 신화를 이뤘다.

하지만 요즘도 그녀는 샌드위치와 바나나 등 가방에 넣어가지 고 다니며 끼니를 때우고, 아침에 산 커다란 커피 한 잔을 오후까지 홀짝홀짝 아껴 마시기 일쑤. 돈이 그렇게 많은데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아껴야 돈을 모을 수 있죠. 이런 기본적인 원 칙부터 지켜야 돈을 벌 수 있어요.”

이모가 운영하던 뉴욕 액세서리 가게 인수 후 몸살나게 바빴던 초보 사업가

2007년에 출간한『방미의 종자돈 700만원으 로 부동산 투자 200억 만들기』가 베스트셀러 에 오르고 방송국 작가들의 섭외 전화가 하루 종일 울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지난 2월 말 뉴욕으로 떠났다.

그녀의 사업가로서의 재능은 이모네가 운영하던 액세서리 도매 가게를 50 만 달러(약 6억원)에 인수할 때도 빛났다. 공 간을 쪼개 렌트를 줌으로써 매월 1만500달러 씩(한화로 약 2500만원) 경비를 줄인 것.

“공간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렌트비의 절반 정도를 절감할 수 있어요. 절감한 렌트 비용을 신상품 들여오는 데 투자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인 것 같아요.”


최근엔 10만 달러(한화로 약 1억원)를 들여 판매 제품을 바꾸고 소매 위주로 전략을 수정했다. 비즈니스도 부동산 투자와 같은 면이 많아 버릴 때 확실히 버려야 한다. 인테리어를 위해 재고로 남아 있던 물건을 과감하게 처분했다. 주변에서는 싸게라도 팔라고 했지만 필요 없는 물건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인테리어에 악영향만 준다고 판단했다.

“가게를 오픈하고 6개월 동안은 매일 아침 7 시에 나와서 셔터 문을 열었어요. 인테리어 비 용이 많이 드니까 페인트를 직접 사갖고 와서 칠하고, 전기선 라인 정리하는 것도 직접 다 했어요. 비용을 상당 부분 절감한 셈이죠.”

지금 맨해튼에서 운영하고 있는‘트렌디 코너’ 액세서리 가게는 권리금이 다소 부담됐지만 그만한 값어치를 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뛰어들었다. 이모가 운영해왔기 때문에 비즈니스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매출액은 물론 순수익이 얼마인지, 재고는 얼마나 있는지 눈감고도 훤히 알고 있었고, 리스 계약도 7년 이상 남아 있었던 것.

“만약 잘 모르는 사람이 하던 비즈니스였다면 상황이 달랐을 거예요. 아마도 제 성격상 매장에 일주일은 가만히 앉아서 철저히 매출액을 비교하며 조사했을 거예요. 조금 부담되는 권리금은 철저한 조사와 좋은 로케이션, 창의적 액세서리 사업하며 뉴요커로 변신, 5살 연하 사업가와 19년 열애 스토리 첫 공개 1액세서리 사업을 시작한 그녀는 직원보다 더 일찍 출 근해 직접 문을 열 정도로 가게 운영하는 재미에 푹 빠 져 지낸다. 2 매일 액세서리 도매 시장을 둘러보는 것 도 그녀의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 하나. 3 함께 일하는 에콰도르와 포르투갈 출신의 여직원들. 그녀들의 유쾌 한 말솜씨 때문에 단골손님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1 2 3

인 운영 계획을 통해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다 고 생각했죠. 지금 월 매출이 8만 달러쯤 되는 데 이 정도면 선방한 거죠, 뭐.”

60만달러 짜리 콘도미니엄에 투자… ‘방미 게스트하우스’의 안주인이 목표

가게는 뉴요커들의 눈에 들기 좋은 위치인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다. 덕분에 단골 고객을 잡기도 편하고, 관광객 등 방문자들이 많다. 인테리어를 마무리한 여름부터 손님이 부쩍 늘 었고, 한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찾아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무렵 그녀는 한 한인언론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맨해튼 곳곳을 누비며 발품을 팔아 투자 노트를 연재하기 도했다. ‘올가을엔 사랑할거야’‘날 보러 와요’등으 로 80년대를 꽉 잡았던 톱 가수의 카리스마는 가게 인수 외에 부동산 투자에서도 유효했다. 뉴욕에 재입성한 후 2개월 동안 발로 뛰면서 시장 조사를 한 후 과감하게 60만 달러(약 7억 원)짜리 콘도미니엄을 구입한것.

“지하철역에서 바로 나오자마자 있어서 교통이 편하고, 콘도 1층에 갭과 같은 상점들이 들 어와요. 상권이 번창하면 살기에도 편할 것 같 아서 선택했죠.”

어퍼 이스트는 맨해튼 최고의 안전하고 깨끗한 고급 주거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학군도 좋고, 렌트 물량도 꾸준하기 때문에 투자 가치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미국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불은 요즘, 투자 리스크에 대한 걱정은 없었을까.

“부동산은 타이밍이에요. 조건이 맞는 매물이 나오면 늘 매입할 생각이었고, 부동산 가격이 30% 이상 다운됐어요. 저한테는 위기가 기회 였던 셈이죠.”

그녀는 돈이 되겠다 싶은 지역에서 직접 살아보는 게 최고의 공부라고 했다. 서울에서 도 항상 집을 사려는 지역에서 몇 달씩은 꼭 살았다. 그녀의 목표는 뉴욕시의 각 지역에‘방미의 게스트하우스’를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구입 한 콘도를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할 계획.

“앞으로 4년 동안 맨해튼에 콘도 10채 정도를 마련하고 싶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오는 유학 생들이나 여행객들을 제 집에서 편안하게 재 워주고, 부동산 재테크에 관한 조언도 좀 해주 고 말이죠.”

뉴욕 곳곳에 도널드 트럼프 건물이 있듯 맨 해튼 곳곳에 자신의 집을 만들어 게스트하우 스를 운영하겠다는 것. 그녀는 앞으로 4년 이 내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액세서리 가게를 더욱더 부지런히 운영하고 있다. 가게의 점 심시간을 이용해 하루에 2~3군데씩 집을 보 러 다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그녀의 일과 중 하나다.

5살 연하남과 애틋한 장거리 연애… 결혼에 구애받지 않는 글로벌 데이트를 즐긴다

사람들은 가수로서 최고의 명예도 누렸고, 부 동산 투자로 돈도 벌었으니 그녀에게“이제 좋 은 사람만 만나면 되겠다”는말을하곤한다. “사실… 저 남자 친구 있어요~(웃음).”

그녀의 목소리에서 행복한 기운과 함께 조심 스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말을 이어갔다. “19년 동안 만났어요. 일반인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불편해 할까봐 공개하기 어려웠죠. 하지만 부동산 부자 때문에 언론에 알려지면서 제 자신이 돈에 목숨 건 노처녀로 보여지는 게 싫더라고요.”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를 자랑하는 그녀의 남자친구는 다섯 살 연하의 사업가. 그는 국내 명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LA로 떠나 UCLA에서 음악 프로듀싱을 전공했다. 지금 은 유능한 사업가로 자리 잡았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서로 성격이 참 잘 맞아요. 설레고 떨리는 시기는 지났고, 지금은 목소리만 들어도 편안하고, 힘이 돼요. 연하지만 어떨 때는 오빠 같고, 또 모성 본능 을 자극해서 제가 엄마 같을 때도 있어요. 매 번 새로우니까 오랜 시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앨범 활동 당시 만 나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 가수 생활을 정 리한 뒤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그녀가 프로 덕션 사업을 고민하고 있을 때, 남자친구도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단다. 첫 사업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

그녀는 과감히 자신의 사 업을 포기하고 남자친구를 응원하기로 했다. 이후 그녀는 가수가 아닌‘인간 방미’의 새로운 인생 설계를 위해 조용히 미국으로 떠났다. 보스턴에서 영어 공부도 했고, 뉴욕에 위 치한 버룩 칼리지에서 뮤지컬 공부도 했고, 부동산 투자를 하여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어찌 보면 그녀에게는 그 시간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는 장 거리 연애가 애틋하다고는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는 것에 대한 불안함은 없을까. 게다가 그녀의 나이 역시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어섰으니.

“마흔세 살 즈음에 결혼이 너무 하고 싶었어 요. 그땐 남자친구가 미국에서 사업을 확장할 때여서 너무 바빴고, 저 역시 그때가 지나고 나니까 굳이 결혼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어요. 둘 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고 살아서 평범 한 결혼 생활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두 사람은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끈끈한 정으로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가끔 그녀는 조촐하고 특별한 두 사람만의 결혼식을 꿈꾸곤 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남자친구와 글로벌한 데이트를 하고, 하루에도 수차례 통화를 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 하다는 그녀.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와 뉴 욕에서의 활기찬 생활 덕분에 그녀의 미소가 유난히 화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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