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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은행 부실자산 직접 떠안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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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 18일 미국 ABC의 시사 프로그램 ‘디스위크(This week)’에 버락 오바마 신임 대통령의 백악관 고문인 데이비드 액설로드가 출연했다. 그는 “구제금융 자금 7000억 달러 가운데 조만간 추가 집행될 3500억 달러는 지난번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쓰일 것”이라며 “은행이 납세자에게 지원받은 돈을 그저 깔아뭉개고 있게 놔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로이터 등은 “금융권의 부실자산을 떠안을 정부 운영 은행을 세울 수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 17일 영국 고든 브라운 총리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내용의 구상을 밝혔다. 그는 “금융시장에서 신용을 회복하기 위해선 은행들의 ‘악성’ 부실자산을 먼저 털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에 공적자금을 추가로 투입하되 정부가 부실채권을 직접 보증해 주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미였다.

경제 회복을 위한 각국의 구제금융 계획이 2단계에 돌입했다. 지난해 휘청거리는 금융회사에 직접 공적자금을 수혈했던 것과 달리, 정부가 이들의 부실자산을 직접 떠안는 방식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부실자산에 대해 보증은 물론, 정부가 배드뱅크를 설립해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매입해 처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자금 순환이 급선무=이들 정부가 배드뱅크 도입이라는 ‘극약 처방’을 택한 것은 기존 구제금융 방식이 신용경색을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됐다는 판단에서다. 부실에 허덕이는 금융회사에 직접 돈을 줬더니 기업이나 개인에게 대출해주기보다 자신들의 부채를 갚거나 인수합병이나 투자자금으로 써버렸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도 18일 금융회사들이 구제금융 자금을 ‘조건없는 횡재(windfall)’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런스 서머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정부가) 부실자산을 정리해 주면 은행들이 대출에 나서게 돼 자금 흐름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등은 반대=정부가 부실자산을 책임지는 것에 대해 부정적 시각도 있다. 은행의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손실을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꼴이기 때문이다. 아직 금융권의 부실자산 규모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터라 투입해야 할 액수가 생각보다 커질 가능성도 많다. 똑같이 금융위기를 겪고 있지만 독일·아일랜드가 배드뱅크를 설립하지 않기로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독일 페어 슈타인브뤼크 재무장관은 이날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주요 금융회사의 부실채권 인수 비용을 1500억~2000억 유로(약 272조~363조원)로 추산했다. 그는 “만약 이런 구상(배드뱅크 설립)을 의회에 상정하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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