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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속의문화유산>15. 시골집뜰. 천연물감. 장독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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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나는 문화유산을 우리보다 앞서 살다 간 분들이 남긴 삶의 흔적이라고 보고 싶다.삶의 흔적은 동시에 앎의 흔적이기도 하다.집을 지을 줄 아는 이는 집을,그림을 그릴 줄 아는 분은 그림을,그릇을 만들 줄 아는 분은 그릇을 유산으로 남겼다.무엇을'할 줄 안다'는 말은 무엇을'할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지나간 삶의 흔적이 쌓인다는 말은 곧 여러 형식과 내용을 지닌 앎이 축적된다는 말이요,달리 말하면 힘이 축적된다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 가운데 지금 내 관심을 가장 끄는 것들은 살림에 연관된 것이고,더 구체화시켜 말하면 의식주에 연관된 것이다.

잘 살던 사람들의 고급문화에 연관된 것도 더러 눈길을 끌지만 어렵게 살던 이들이 남긴 생활문화의 흔적이 내 삶에 더 큰 힘을 준다.

*** 시골집뜰은 정통 朝鮮式 정원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했지만 나는 농삿일에 젖먹이나 다름없다.

의식주에 필요한 것을 기를 줄도,만들 줄도 모르는 처지다.아는게 없으니 힘도 없다.

따라서 농촌문화의 유산을 이어받는 일은 나에게 심미안(審美眼)을 높이고 삶의 질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라 살아남을 길을 찾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로 다가선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농가 뜰 안에는 여러가지 나무들이 서 있다.조그마한 화단에는 꽃도 있다.잘 꾸며놓은 도시의 정원에 견주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뜰이다.

소나무.회양나무.향나무들로 대표되는 늘 푸른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겨울에는 살풍경하기까지 하다.그러나 눈여겨보면 볼수록 이 뜰을 가꾼 분의 슬기로움에 놀라움을 느낀다.

잘 손질된 앙증맞은 상록수로 꾸며놓은 정원은 조선식(朝鮮式)정원이 아니다.내 눈앞에 있는 이 시골집 뜰이 조선식 정원이다.우리집 뜰에는 감나무가 큰 것.작은 것 합해 일곱그루,살구나무.앵두나무.석류나무.보리똥나무가 한 그루씩 있다.또 화단에는 모란.작약.조화.붓꽃들이 심어져 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다른 과일나무들은 한 그루뿐인데 왜 감나무만 유난히 많을까.두해가 지나고 나서야 그 까닭이 조그마한 일깨움으로 가슴을 쳤다.직접 먹어보면서 느낀 바지만 다른 과일들은 모두 한철 음식이다.그리고 많이 먹어보았댔자 배를 불려주지 못한다.그러나 감은 곶감으로 깎아 오래 간직해두고 먹을 수 있을 뿐더러 공복(空腹)에 훌륭한 요깃거리가 된다.

꽃만 해도 그렇다.모란이나 작약.창포.국화 같은 것은 꽃이 보기 좋은 눈요깃거리만은 아니다.

모란과 작약의 뿌리는 좋은 한약재고,창포물로는 머리를 감고,국화꽃은 따서 향기로운 술을 빚을 수 있다.

아,그렇구나.생산문화와 소비문화의 차이가 뜰을 꾸미는데에서까지 이렇듯 두드러지는구나. 색깔의 파노라마 천연물감 우리집 뜰에 서 있는 과일나무들도 나에게 살아있는 문화유산이지만 천연물감을 만드는 여러 재료와 물들이는 법을 일러주는 마을 어른들이나 이웃들도 훌륭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초여름부터 우리는 베에 천연물감을 들이는 실험을 해왔다.

처음에는 곶감을 찧어 갈옷을 만들었는데 한겨울이 되어 일손이 한가해지면서 차츰 실험의 범위를 넓혀갔다.참나무껍질,밤나무껍질,황토와 규토,쑥.소리쟁이.엉겅퀴.개망초…그리고 붉은 색과 푸른 색을 얻기 위해 잇꽃과 쪽의 씨앗을 구해 밭에 뿌렸다.

처음 출발은 염료산업이 공해산업인데다 살갗에 닿는 인공염료가 건강에 이롭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 이루어졌는데 일하는 틈틈이 물들인 옷감이 이제 자그마치 쉰가지가 넘는다.

하기에 따라 같은 밤나무껍질이나 쑥에서도 한가지 색만 나오는게 아니라 그야말로 색깔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양파껍질도 쓰레기로 버리지 말고 모아두면 좋은 천연물감 재료가 되는데….”무심히 던지는 이런 한마디가 우리의 귀에는 가뭄에 듣는 단비소리보다 더 반갑다.

항아리로 찬 장독대의 美學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앎과 힘의 원천인 문화유산은 이렇듯이 살아 숨쉬는 생명체의 모습으로 전승돼 오기도 하지만 살림에 도움이 되는 세간살이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지지난해부터 모으기 시작한 항아리가 큰 것.작은 것 합해 지금은 6백개가 넘게 장독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옛 항아리들을 모으기 시작한 동기는 단순하다.

지난 70년대부터 농촌살림이 어려워지면서 도시로 떠난 이들이 무척 많은데,이 분들이 떠날 때 빈 집에 남기고 가는 대표적인 세간이 큰 항아리다.

가지고 가보아야 이삿짐만 늘뿐 어디에 둘 곳도 마땅치 않아 깨지기 쉬운 이 항아리들을 장독대에 남겨놓고 떠난다.

장독대에서 빈 집을 지키는 이 항아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밑이 빠지거나 깨져 못쓰게 되기 십상이다.

그 항아리를 빚은 옹기장이 어르신들의 공력도 공력이거니와 1천2백도가 넘는 높은 온도에서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 때 구워낸 소중한 그릇이 아무데도 쓰이지 못하고 버림받는게 안타까워 이 숨쉬는 항아리들에 간장.된장.고추장.식초.효소.젓갈들을 담아 익히면 어려운 살림에 보탬이 될 날이 오리라는 기대 속에서 모아놓은 것인데,장독대를 크게 만들어 그 안에 앉혀놓고 보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처음에는 솜씨가 뛰어난 것,서툰 것이 가려지고 모양이 예쁜 것,안 예쁜 것이 비교되어 이것이 더 낫고 이것은 별로다 하는 분별이 생기더니 두고 보면 볼수록,그리고 그 항아리들을 하나하나 채워가는 여러 발효식품들의 냄새가 코끝을 스치면 스칠수록 그런 구별이 없어지고 잘 생기면 잘 생긴대로,못 생기면 못 생긴대로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때로는 햇빛 속에,때로는 달빛 속에,또 때로는 나무그늘 사이로 짙게 묻어난다.

지난 2백년동안 자본이 숨은 주체가 되어 빚어낸'만드는 문화'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 수천년동안 자연이 숨은 주체가 되어 키워온'기르는 문화'의 유산들이 낡은 생활양식의 찌꺼기로 치부되어 여기저기 함부로 버려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앓이를 하는데,이 가슴앓이가 다만 지난날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은 믿지 않는다.

수천년,수백년의 세월에 걸쳐 대대로 전승돼 오면서 우리네 살림의 기둥이자 버팀벽 노릇을 해오던 그 많은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면 나날의 삶을 사람답게 꾸려갈 앎도 힘도 잃어버리지 않을까.그렇게 되면 우리가 당장 살길이 막힐 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들의 살길조차 없애버리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눈앞을 가린다. 윤구병<농부. 前충북대 철학과 교수>

<사진설명>

시골집 뜰 - 정연한 상록수들로 꾸며놓은 오늘날의 정원과 달리 원래 우리의 정원에는 감나무.살구나무.앵두나무등 과실나무와 모란.작약등 약재들이 많아 조상들이 일군 생활의 지혜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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