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김덕수패 연습 장면 보고 사물놀이에 빠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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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교수는 “사물놀이는 친근하고 열정적인 한국인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국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 대학(SOAS: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20년 가까이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 키스 하워드(53·사진) 교수는 신명이 났다. 서울 광화문 아트홀에서 만난 그는 무대에 있는 장구를 보더니 이내 집어들어 능숙한 손놀림으로 연주를 했다. 중중모리며 자진모리를 울려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1980년대에 사물놀이의 명인 김덕수 선생부터 전남 진도의 이름없는 무당까지 찾아다니며 한국의 장단을 두루 익혔다”는 그의 실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달 초 주최한 ‘사물놀이 탄생 3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에 참석차 방한한 그를 만났다.

SOAS 홈페이지(www.soas.ac.uk)를 살펴봤더니 ‘민족음악, 한국 음악을 비롯한 동아시아 음악, 한국 문화와 사회, 작곡, 음악교육, 샤머니즘, 음악과 종교, 음악 비즈니스’라는 광범위한 분야가 그의 담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물놀이며 가야금 산조에 무속 신앙까지 한국 문화에 대해 쓴 책이 10권이 넘는다.

그가 처음에 한국에 온 것은 81년 여름. 장구 명인 김병섭 선생의 주소가 적힌 종이쪽지 하나 달랑 들고 공항에 내렸다. 그렇게 시작한 장구와의 인연은 사물놀이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서양에선 중국과 일본에 관심이 많지만 저에겐 신비에 싸인 한국이 오히려 매력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일본·중국·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곳을 다니며 공부했지만 여전히 한국이 가장 흥미로워요.”

그가 특히 매료된 분야는 한국의 민속음악. “강렬한 리듬으로 관객과 공연자가 하나가 되는 농악을 보세요. 일본에도 다이코(太鼓)라는 북 연주가 있지만 관객은 숨죽이고 지켜보기만 합니다. 반면, 한국 민속 음악은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들여 하나가 되게 합니다.”

매력을 느끼긴 했어도 배우기가 쉽지는 않았다. 81년 처음 왔을 때 말 한마디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김병섭 선생으로부터 장구를 배웠다. “사실 말은 필요 없었어요.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지요. 선생님이 먼저 연주를 하면 제가 따라서 하는 식이었어요. 제 연주를 마음에 들어 하실 때까지 몇십 번을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몇 주간 혹독한 훈련을 거친 뒤에야 문하생으로 인정받았다. 한국말도 배웠고, 다른 전통 악기도 익혔다. 연구도 병행했다. 농요 소리꾼을 찾아 진도의 논두렁에 다녔고, 상여놀이인 ‘다시래기’를 녹음했다. 판소리, 민요도 배접했다.

그러다 82년 전환점을 만났다.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공연 연습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푹 빠져버린 것이다. “한국 민속 음악의 경쾌한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이를 무대로 가져온 게 사물놀이 공연이잖아요. 세계적으로도 통할 거라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해외 공연을 주선하고 매니저 역할도 했다. 영국 BBC 출연 섭외도 그가 나서서 했다.

김덕수씨는 하워드 교수를 “한국 사물놀이에 둘도 없는 친구”라고 표현했다. “하워드 교수는 해외에서 운전부터 방송 섭외까지 많은 일을 해줬지요. 사물놀이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한국이 고마워해야 할 분입니다.”

하워드 교수는 전통 음악에 대한 홀대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 민속 음악을 제대로 알리는 외국어 사이트를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군요. 일본의 경우엔 ‘다이코’ 연주를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어놓고 세계 각국에서 연주를 접할 수 있는 곳을 소개하고 동영상도 많이 올리더군요. 하지만, 판소리나 종묘제례악은 그렇지 않아 아쉽습니다.”

애플사의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인 ‘아이튠’을 들어가 봐도 정통 한국 민속 음악은 없고, 크로스오버 곡만 몇 개 나올 뿐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문화는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매료시키는 거지요. 그러기 위해선 사람들에게 한국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합니다.”

한국에 올 때마다 전통 음악이 사라져가는 걸 느껴 섭섭하다고 했다. “80년대에만 해도 전통 음악, 민속 음악이 한국인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였어요. 골목 곳곳에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앉아 민요를 부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지요. 이젠 그런 분들이 눈에 띄지 않더군요. 산신이나 도깨비 이야기도 많이 사라진 듯하고요. 아쉬운 일입니다.”  

전수진 기자, 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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