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스타일리스트>국내유일의 표정디자이너 정연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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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나이,마흔살. 올해로 딱 마흔이 된 정연아(사진)씨는 본인뿐 아니라 남의 얼굴까지 다스려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 표정연구가-. 정치인·영업사원등 ‘표정관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강의와 자문을 해주고 훈련시키는 일이다. 외국엔 꽤 여럿 되는데 우리나라엔 혼자뿐이다.

표정이 무려 7천가지에 달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얼굴에서 표정을 관장하는 근육이 80종류나 되고 그것이 각각 무수한 조합을 만들어내니 평생을 연구해도 모자란다는게 그녀의 설명이다. <관계기사 37면>

보통사람이 상대방의 첫인상을 판단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개 6초.하지만 정씨는 2초에 모든 것을 알아낸다.물론 오랜 훈련의 결과다.

“공부하기엔 TV가 제일 좋아요.연기자들은 표정을 풍부하게 하는 연습을 늘 하잖아요.” 그래서 영화·드라마 볼 때가 제일 바쁘고 정신없다. 화면에 한두명이 등장할 땐 별 문제가 없지만 동시에 여러명이 나오면 이사람 저사람 번갈아 표정의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줄거리를 놓치면 안된다.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하니까.

길거리는 공부에 큰 도움이 안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표정하기 때문이다.이 점에서 그녀는 공자(孔子)를 원망한다. “감정표현이 헤프면 안된다는게 유교적인 관념이잖아요.삼국시대 유물에 그려진 사람들 표정만 해도 늘 미소가 가득했는데 유교때문인지 표정이 망가졌어요.”

우는 것도,찡그리는 모습도 다 표정이긴 하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작업이 결국은 웃는 얼굴을 만드는 것이라고 얘기한다.“지극히 당연한 소리지만 웃는게 가장 바람직한 표정이에요.건강을 지키는데도,젊음을 유지하는데도….”

그녀가 이런 일을 시작한 건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무표정한 얼굴이 너무 미웠기 때문이다.대학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한 정씨는 85년 결혼하면서 시부모를 모시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됐다.5년쯤 지났을까.좀이 쑤셨다.메이크업 학원을 다녔다.주부가 일을 시작하니 자연히 집안이 어수선해지고 시어머니와의 마찰도 잦아졌다.마음의 병은 위궤양등 몸의 병으로 이어졌다.

부쩍 나이들어 보인다는 친구들의 말에 속이 상했다.우연히 미국·일본잡지에서 표정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스마일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거기에 소개돼 있었다.거울 앞에서 몇개의 표정을 지어보았다.너무 재미있어 빠져든 ‘표정 다듬기’ 3년.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좋아졌다.시부모님도 웃는 얼굴에 화를 내진 못했다.

91년 사업화에 확신을 갖고 뛰어들었다.이젠 강의청탁이 늘어나 외국 문헌들을 연구할 시간조차 부족할 정도다.틈틈이 써놓은 글을 모아 얼마전엔 ‘성공하는 사람에겐 표정이 있다’라는 책도 냈다.

불혹(不惑)의 나이라는 말에 그녀는 깔깔 웃는다.“전 아직 욕심이 많아요.우리나라가 웃음으로 가득 찰 때까지 열심히 뛸 겁니다.우선 목표는 공무원.그들의 얼굴에 미소를 심어놓고 말거예요.”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많이 나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근엄한 표정으로 일관하는게 우리의 공복(公僕) 아닌가.

다음 대상은 의료인이다.이들의 웃음은 환자에게 만병통치약과 다름없건만 병원가서 오히려 병을 얻어오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급한대로 이들 두 직업의 표정만 달라져도 세상이 훨씬 환해질 거예요.” 누가 이 세상에서 제일 긴 영어단어를 ‘미소’(smiles::s와 s사이가 1마일)라 그랬나.그만큼 웃음짓기가 어렵다는 뜻? 하지만 그녀 앞에 서면 미소는 ‘단숨’인데….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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