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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트로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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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원제 The Trojan War in Ancient Art
수잔 우드포드 지음, 김민아 옮김
루비박스, 252쪽, 1만1900원

교과서나 퀴즈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서양 고전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이름은 수없이 들먹여지지만 정작 그 책을 읽은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서사시라는 생소한 형태로 쓰여진 데다가 등장인물도 많고 줄거리도 복잡해 책장을 계속 넘겨가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이 책들에 새로운 빛을 던져준 것이 영화 ‘트로이’다. 한국에서 이미 수백만명이 이 영화를 보고 아킬레스·헥토르·아가멤논·프리아모스 같은 인물에 대해 얘기한다. 책 속에 묻혀있던 인물이 영상의 힘을 빌려 되살아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는 3000년 전 영웅들의 드라마를 많이 단순화했다. 영화 제작사 측은 “신화적인 요소들을 빼고 인간의 이야기로 만들려고 했다”고 설명한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도 과장과 생략은 어쩔 수 없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영화는 고대 그리스 전설(역사학자들은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인지를 놓고 계속 논란을 벌이고 있다)에 대한 호기심을 촉발했다. 그리고 때맞춰 나온 새 책 『트로이』는 그런 관심을 이어가기에 좋은 책이다.

이 책은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견된 도자기에 새겨진 그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림들은 모두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등에 나타난 고대 그리스의 모습이다. 그곳에는 남편을 버리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를 따라간 절세미인 헬레나의 탄생과정과 아킬레스가 파리스의 화살에 발 뒤꿈치를 맞고 생을 마감하는 장면 등이 생생하게 새겨져있다.

런던대학과 대영박물관에서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는 저자 수잔 우드포드는 110여개의 도자기 그림과 고대 그리스 문학작품을 통해 트로이 전쟁을 재구성했다. 책을 읽다보면 트로이 전쟁은 영화와는 달리 10년 동안 지속된 전쟁이었고, 아킬레스는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의 목마’라는 잔꾀를 생각해내기 전에 전사했으며,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로이』는 특히 영화 ‘트로이’가 무시했던 신들의 이야기를 되살려 놓았다. 그 속에는 파리스가 최고의 미인에게 주는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는 바람에 다른 여신들의 질투를 사게 됐고, 결국 트로이의 몰락이라는 사건으로 이어지는 신화적 세계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런 신들의 장난 속에서 정해진 운명 때문에 괴로워하고, 사랑에 목숨을 던지는 인간들도 등장한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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