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유래>성동구 옥수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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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성동구옥수동의 원이름은'두뭇개'다.동쪽에서 흘러오는 한강과 동북쪽에서 흘러오는 한천의 두 물줄기가 이곳에서 합쳐진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한자식 음사는 두모포(豆毛浦)다.

영조때 두모방(坊)두모포계(契)에 속했던 이곳은 일제초기까지만 해도 두모동.두모리등으로 불렸다.지금의 이름은 36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옥수정(町)이라 한 것을 광복후 우리식으로 바꾼 것.이 마을 339번지에 옥정수(玉井水)라는 유명한 우물이 있어'옥정숫골'이라 부른데서 비롯됐다.지금도 그렇지만 이곳 앞강은 동호(東湖)라 하여'한강 8경'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 경치가 좋아 조선때는 권세가들이 앞다퉈 정자를 지어 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유하정(流霞亭).황화정(皇華亭)등 궁실은 물론 김안로(金安老)의 보안당(保安堂),정유길(鄭惟吉)의 몽뢰정(夢賚亭),조선조말 조대비가 태어난 쌍호정(雙虎亭)등 개인별장도 부지기수였다.명종때 권신 윤원형(尹元衡)의 첩으로 정경부인에까지 올라 심심찮게 사극에 등장하는 요화(妖花)난정(蘭貞)이 백성들의 원한을 씻는다며 방생하거나 십여섬씩의 밥을 지어 고기밥을 주던 곳도 이곳 두뭇개다.

지금도 50대 이상 토박이들은 옥수동3통 일대를'한림말'로 부르는데 이는 이곳에 있었던 그 유명한 동호 독서당(讀書堂)에서 연유한 것으로 약수동~옥수동 사이 길이름을 독서당길이라 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중종 12년(1517)에 세워져 그냥 호당(湖堂)으로 애칭되기도 했던 독서당은 정암.퇴계.고봉.송강.오성.한음등 웬만큼 뜨르르했던 제제다사(濟濟多士)들은 거의 다 배출해 본당인 옥당(玉堂.집현전이나 홍문관)에 어깨를 견줄 정도였다.

10만 양병설로 유명한 율곡의 '동호문답'도 바로 이곳에서 저술됐다.오늘날 동빙고동은 용산구에 속하지만 동빙고는 정작 지금의 옥수동8번지에 있었다.한편 예로부터 콩나물 하면 청파동과 함께 이곳'두뭇개 콩나물장수'를 쳐주었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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