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외국돈 빌리기 양극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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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한보사태 이후 국내은행의 대외신용도에 따라 해외차입금리 격차가 큰 폭으로 벌어지고 있다.

외국돈 빌리기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가운데 신용이 떨어진 은행은 차입이 더욱 어려워지고 신용이 좋은 은행은 그나마 수월하게 빌리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16일 금융계에 따르면 최근 만기 6개월 이하의 해외 단기자금시장에서 대외신용도가 비교적 높은 신한.기업.주택.국민.장기신용.하나은행의 경우 리보금리에 평균 0.25~0.3%의 가산금리(스프레드)를 물고 있다.

이에 비해 한보사태와 직접 관련이 있거나 삼미.진로에 거액여신을 물린 은행들의 경우 이보다 최고 0.3~0.4%포인트 높은 금리를 줘야 돈을 빌릴 수 있다.

또 자금사정이 좋은 은행들은 대규모 차입을 미루면서 해외 자금브로커들과 금리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외화가 부족한 은행들은 브로커들이 부르는 높은 금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 금리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93년에도 상업은행이 한양등에 대한 부실여신으로 다른 은행에 비해 0.2%포인트 정도 높은 가산금리를 문 적은 있으나 은행간 해외차입금리차가 이처럼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시중은행 해외차입 평균 가산금리는 지난 3월 0.4~0.45%로 오른뒤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며“그러나 은행별 격차가 워낙 커져 평균치가 지표로서의 의미를 잃을 정도”라고 말했다.

1년 이상 장기채권금리도 차별화가 심해져 제일은행이 96년 이전 유럽에서 발행한 변동금리부채권(FRN)의 유통수익률은 리보에 0.8%를 더한 수준으로 타행보다 0.3~0.5%포인트 높아졌다.

더욱이 제일등 한보관련 은행은 금리와 관계없이 해외증권을 인수할 기관투자가를 찾지 못해 발행을 모두 하반기 이후로 미뤄놓았다.

한편 장기신용은행의 경우 16일 1억달러 규모의 1년짜리 FRN을 리보금리에 0.43%(지난해말에는 0.24~0.26%)를 얹어 발행했다. 이는 한보사태및 삼미부도가 모두 반영된 금리로 한국계 은행에 대한 국제평가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장기신용은행 강준민 외화자금팀장은“은행들 사이에 차입조건이 차등화되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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