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바둑도 정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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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공상과학영화'로보캅'이나'터미네이터'등을 보면 인간이 컴퓨터 칩이 내장된 로봇에 의해 무참히 당하는 모습이 나온다.광속(光速)연산능력에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나 신경망칩이 일반화되면 인간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컴퓨터의 지배를 받을지도 모른다.

성급한 인류학자들은 오감(五感)을 갖춘 살아있는 컴퓨터 연구가 한창이라는 점을 주시,인류의 역사가 스스로의 창조물인 컴퓨터에 의해 바뀌게 될 것이라는 성급한 예단마저 내놓고 있다.천하무적으로 불리던 세계 체스 챔피언 러시아 게리 카스파로프가 미 IBM슈퍼컴퓨터'딥블루'에 무릎을 꿇자 첨단과학의 총아인 컴퓨터의 가능성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양의 예지와 강태공의 깊은 속내가 담겨 있다는 바둑이나 장기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칸수가 64개로 경우의 수가 적은 체스는 보통 고수(高手)라면 3~6수 앞을 보고 마(馬)를 움직인다.따라서 32개의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중무장하고 반복학습을 거친 딥블루가 체스에서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하지만 가로.세로 19줄,3백61개의 점으로 짜인 바둑판 위에서는 우주의 원자수에 맞먹을 정도로 수가 천문학적이다.세력.승부감각.임기응변능력등을 갖춘 프로기사는 수십 수 앞을 보기 때문에 딥블루도 기력을 당해 낼 재간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수 싸움등 국지전에서는 연산능력이 뛰어난 컴퓨터가 강하지만 국면 전체를 읽고 유인할 경우 컴퓨터는 역시 엉뚱한 반응을 보이고 만다는 것.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 연구는 70년대초 미 UCLA대학에서 시작된 이래 현재 최고 수준이 아마추어 8~10급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세계 최강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중국의'핸드토크'나 영국의'고(GO)',미국의'매니 페이스즈 오브 고',대만의'고 인터렉트'등의 프로그램도 15점을 접고 초등학생과 대결해 신승을 거뒀다.

'천하바둑'과'사선고'등 국산 바둑프로그램을 개발한 ㈜사위컴손의 최홍국(崔烘國)실장은“슈퍼컴퓨터를 사용해도 결국 소프트웨어가 중요한데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논리회로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약 5~6급 수준까지는 투자하기에 따라 컴퓨터가 매년 0.5~1급 정도씩 실력이 늘 수 있다는 전문가 주장도 있다.

장기는 경우의 수가 바둑보다 비교할수 없이 적어 딥블루와 같은 슈퍼컴퓨터에 프로그램을 보강하면 앞으로 3~4년내에 인간을 위협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연세대 전자공학과 이재용(李載用)교수는“인공지능.신경망컴퓨터등 자체사고력과 직관을 갖춘 컴퓨터는 공학도들의 최대 과제”라며“컴퓨터와 인간은 영원한 벗이지 경쟁관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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