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협력 + 군사신뢰…남북 관계 업그레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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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 회담에서 밤샘 협상 끝에 합의를 이끌어낸 남측 박정화 수석대표(右)와 북측 안익산 대표단장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4일 오전 7시 2차 장성급 군사 회담의 합의문 서명을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서는 박정화(준장)남측 수석대표의 눈이 충혈돼 있었다. 그는 "밤새 한숨도 못 잤다"고 말했다. 남북 양측은 21시간의 무박(無泊) 협상으로 합의문안을 만들어 냈다.

◇남북관계 양 날개 마련=이날의 합의문은 남북 군사 당국이 세밀하게 만들어 낸 긴장완화 실천 조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긴장완화에 노력한다"는 원론적 합의는 많았다. 1974년 남북 공동성명, 92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그렇다. 그러나 함정 간 공용주파수 사용처럼 세부 합의로 발전되지는 않았다. 합의가 순탄하게 이행된다면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남북 관계가 경제.사회 협력과 군사적 신뢰 구축의 양 날개로 움직일 실마리도 마련됐다. 장성급 회담이 앞으로 본격적인 남북 간 군사 채널로 가동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남북 간 경제.사회 협력은 상대적으로 활발하다. 그러나 군사 당국 간 접촉은 극도로 제한돼 왔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이번 회담으로 (경제.사회 협력에 이어) 군사회담에서도 정례화의 틀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장성급 회담은 2000년 남북 국방장관 회담의 연속선 상에 있다. 장성급 회담이 향후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계기라는 의미다.

◇잠복한 북방한계선(NLL) 갈등=합의문에서 남북은 NLL에 대한 양측 입장을 삭제했다. '서해 해상'으로만 표현했다. 남북 해군 간에 경계선이 무엇인지는 없다. 북측은 회담 시작 때 "서해 충돌의 근원부터 제거하자"고 요구했다. NLL을 다시 긋자는 의미다. 남측은 이를 거부했다. 합의문 도출의 계기는 3일 오후 9시 시작된 3차 실무접촉에서다. 북측은 이 자리에서 북한 당국이 보낸 수정 제안을 공개했다. 수정안에서 NLL 문제는 "서해 해상에서 상호 함정을 통제한다"는 것으로 완화됐다. "계선(해상 경계선)을 새로 만들자"는 구절은 사라졌다. 남측은 이를 수용하는 대신 우리 측의 네 가지 충돌 방지안을 합의문에 구체화했다. 이런 점에서 합의문은 타협안이다. 서해 우발 충돌 방지 방안에 합의하고도 NLL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은 남겨놓은 셈이다.

군사분계선 지역의 선전 수단 제거는 북측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다. 북측은 1, 2차 회담에서 "이 문제에 우리는 절실하다"고 반복했다.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은 우리 측의 전광판과 확성기 방송에 대응할 여력이 없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북 비방방송은 전혀 없다. 그러나 뉴스.가요만 전달해도 북한 주민과 젊은 군인들의 심리적 동요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측은 ▶선전 수단 제거 상호 검증▶향후 선전 수단 재설치 금지까지 합의했다. 윤리적 논란도 없고, 우리 측에도 유리한 사안을 섣불리 양보했다는 보수층의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서해 충돌 방지 신속 추진=서해 충돌 방지 합의 사항은 당장에라도 실천할 수 있다. 국제상선공통망(공동 주파수)은 해상에서 양측 함정이 무전기 주파수를 156.8MHz, 156.6MHz에 맞춰 놓으면 된다. 곧장 통신이 가능하다. 깃발과 발광 신호도 전 세계 공통신호로 만들어져 있다. 남북이 이를 이용하면 된다. 이후 남북 간에만 통용되는 공용 신호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국방부는 검토 중이다. 직통전화는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공사를 위해 가동 중인 회선을 서해 충돌 방지 '핫라인'으로 사용한다.

속초=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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