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기 중 외유로 국회 비워 문제 … 관광 일색 ‘의원 외교’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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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박기춘 의원이 12일 국회에서 임시국회 회기 중에 방콕 외곽의 한 리조트로 골프 외유를 다녀온 것에 대해 사죄하고 있다. [뉴시스]

▶뉴스 분석 “이번 문공위원들과 같이 자기 손으로 추경예산에 (외유)경비를 계상해 놨다는 것은 참으로 최고의 지능을 발휘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은 그들의 지능이 유감없이 의정 단상에 반영되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랄 뿐이다.”

1966년 4월 22일자 중앙일보 사설 내용이다. 당시 국회 문공위(현 문방위) 소속 의원들이 ‘재일동포 학생 교육 실태 조사’란 명분으로 일본에 가기 위해 정부가 요청하지도 않은 예산 500만원을 추경 편성하자 이를 비판한 것이다.

이처럼 국회의원의 외유(外遊) 논란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국회 임기 때마다 외유를 둘러싼 잡음이 일었지만 수십 년간 아무런 개선 없이 똑같은 논란만 되풀이되고 있다.

의원 외유가 도마에 오르는 경우는 두 부류다. 첫째, 이번 민주당 의원들의 골프 파문처럼 회기 도중 개인적 일정으로 외국에 나가는 사례다. 과거엔 이런 경우에도 암암리에 외부 기관의 지원을 받아 외유 길에 오르는 의원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 그런 행태는 많이 줄었다는 게 정설이다. 다만 의원이 개인비용으로 나가더라도 회기 중에 국회를 비우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김형준 교수는 12일 “미국에선 회기 중에 외국에 나갈 때는 모두 의회에 보고를 하는데 이번에 민주당 의원들은 생일파티를 하러 태국에 갔다는데 보고를 했을 리 없다”며 “입법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도취감에 빠져 의원으로서의 역할을 망각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회기 중 외유라 할지라도 의정활동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사생활의 영역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홍익대 법과대학 임종훈 교수는 “이번 민주당 의원들의 외유는 주말을 이용해 자비를 들여 가족과 함께 간 것이니 문제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공식 의원외교 명목으로 나가 놓곤 정작 관광만 챙기는 경우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의원외교 활동에 들어간 예산은 190억원가량이다. 의원외교가 상대국과 우호관계를 증진하고 의원들의 견식을 넓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상당수의 의원외교 스케줄이 유명 관광지 중심이란 것도 의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상임위 차원의 해외 시찰이 특히 그렇다. 의원들은 보통 2년에 한 번꼴로 상임위 해외시찰 기회를 갖는다.

의원외교 활동 규정상 해외시찰을 하려면 계획서를 전년도 11월 말까지 국회에 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곳은 거의 없다. 시찰 보고서의 내용도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를 짜깁기한 수준이 허다하다. 마땅히 유권자들에게 공개해야 할 보고서지만 국회는 정보공개 청구 절차를 통해서만 열람을 허용하고 있고, 복사도 못하게 하고 있다.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손혁재 교수는 “의원외교에 관한 국회 규정을 강화해 외교활동과 사적 일정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무슨 목적으로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에 대해 국회의장과 정당 대표들에게 사전·사후 보고하는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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