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60> 신태용의 성남, 개혁 칼 뺐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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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12월 프로축구 성남 일화의 사령탑에 오른 신태용(39) 감독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신 사장’이었다. 그는 2007년 자신의 영문 이니셜을 딴 ‘TY 스포츠 아카데미’를 설립했고, 호주에 축구 및 골프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라운드의 여우’라는 별명처럼 그는 사업에서도 수완을 발휘했다. 대인관계가 원만했고, 판단과 결정도 빨랐다. 그를 성남 구단이 점찍었다. 구단은 노쇠하고 침체된 이미지의 팀을 혁신하라는 미션과 함께 큰칼을 쥐여줬다. 신 감독은 그 칼을 휘둘렀다. 그는 이동국(30)을 비롯한 고참들에게 “다른 팀을 알아보라”며 방출 통보를 했다.

어떤 기준으로 이동국을 내보내기로 했는지 신 감독에게 물었다. “동국이는 팀 내 최고 연봉을 받았다. 90분을 뛰어도 시원찮을 선수가 교체 출전하거나 경기에서 빠졌다. 죽기살기로 뛰어도 모자랄 판에 정신력 부족을 드러냈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신 감독은 “김상식(33)·김영철(33) 같이 팀을 위해 10년씩 고생한 선수도 내보내는 판국에 동국이를 안고 간다면 얘기가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요컨대 이름값이나 과거를 따지지 않고 미래를 위해 새 판을 짜겠다는 구상이었다. 결국 이동국과 김상식은 지난주 전북 현대로 트레이드됐다.

그런데 천하의 신태용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성남 일화라는 구단 자체의 문제다. 통일교 산하의 성남 구단은 자금력을 앞세워 특급 선수들을 영입했고, 많은 우승컵을 모았다. 하지만 ‘성적’ 외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마케팅을 잘 해 돈을 벌고, 지역에 밀착해 홈 팬을 끌어들이는 데 소홀했다는 게 축구계의 평판이다.

프로축구연맹의 한 관계자는 “성남이 가장 많은 리그 우승(7회)을 했지만 ‘명문’ 소리를 못 듣는 이유는 선진적이지 못한 구단 운영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성남은 매년 리그 상위권 성적을 거뒀지만 관중 수는 하위권을 맴돌았다. 지난해 홈경기 평균 관중도 6921명으로 K-리그 14개 팀 중 12위였다.

지난해 하반기 성남 구단의 모그룹이 혁신 인사를 단행하면서 축구단에도 새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됐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김학범 감독을 경질하면서 20년간 자리를 지킨 박규남 사장의 사퇴도 예정된 수순으로 보였다. 그런데 박 사장은 올해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남은 프로축구연맹 수장인 곽정환 회장이 구단주를 맡고 있는 팀이다. 곽 회장은 사재를 털어 ‘K-리그 선진화’ 연구 용역을 맡길 정도로 축구 발전에 관심이 크다. 하지만 자신의 팀이 진정한 명문 구단이 돼야 곽 회장의 말에도 힘이 실릴 것이다.

신 감독은 “성적만 좋으면 알아서 관중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틀렸음이 판명됐다. 선수들이 조기축구회에 나가 함께 공을 차면서까지 팬에게 다가서는 게 진정한 프로”라고 말했다. 젊은 사령탑을 세운 성남이 친근하고 세련된 구단으로 탈바꿈할지 지켜볼 일이다.

정영재 기자·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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