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매스컴, 見濁의 주.조역 안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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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4일(음력4월8일)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상현(尙玄) 이능화(李能和)가 지은'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를 읽은 기억이 되살아 난다.상현거사(尙玄居士)는 이 책에서 불탄일(佛誕日) 양설(兩說)을 적고 있는데,본행경(本行經).인과경(因果經)등에는 음력2월8일이 불탄일로 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우리나라에서 기념하고 있는 음력4월8일의 부처님 오신날은 서응본경(瑞應本經).보살본기경(菩薩本起經)등의 소설(所說)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사월초파일이 성대하게 기념되는 내력에 대해서는 두가지 이설(異說)이 있다.하나는 4월8일이 불탄일이라는 설(說)이고,또 하나는 4월8일이 북부여(北夫餘) 해모수(解慕漱)의 탄생일로서 배달겨레 최대의 명절이었다는 설이다.복초(伏草) 최인(崔仁)의 설명에 따른다면 해모수의 탄생일은 고구려.고려시대까지도 최대의 명절이었고,이것이 불교의 흥성과 더불어 불탄일에 겹쳐졌다는 이야기다.

부처님 오신날의 역사적인 내력은 물론 종교나 아카데미즘 차원의 것이지 저널리즘 차원에 속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을는지 모른다.그러나 나는 그런 차원에 구애받는 것을 그렇게 반기지 않는 입장이다.흔히 저널리즘은'넓고 얕은 것'이 특징이고,아카데미즘은'깊고 좁은 것'이 특징이라고 일컬어진다.하나 나는 저널리즘이야말로'넓고 깊은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불가(佛家)의 말 가운데 견탁(見濁)이라는게 있다.오늘날 우리나라 언론

상황에 그대로 들어맞는 말이 바로 견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이 말의

뜻은 정견(正見)의 반대되는 개념이라는 풀이다.부정견(不正見) 또는

비정견(非正見)이라고 하지 않고'더럽다'는 뜻의'탁'(濁)자를 붙여'정견'을

부정한 것에 어떤 묘미(妙味)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한자에서,본다는 뜻의 글자로는 흔히 두가지가 손꼽힌다.하나는 견(見)이고

또 하나는 관(觀)이다.그런데 본다는 뜻의 이 두 글자는 비단 보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생각하는 것과 연관돼 있기도 하다.말하자면 보는 것은 곧

의식을 통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차원의 것이 된다는 이야기다.하지만 견과

관은 보는 것은 보는 것이로되 그 내용과 깊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견이라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즉 육안(肉眼)으로 보는 것을 뜻하는

글자다.따라서 거기에서 나오는 의견(意見)은 외피(外皮)적인 것이 되기

십상이다.이에 비해 관이라는 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즉 심안(心眼)으로

보는 것을 이름하는 것인데 그것은 외피적이 아닌 내면(內面)의 세계를 깊이

있게 보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따지고 보면 육안으로 보는 눈이 잘못 보는

경우란 두가지 밖에 없다.눈이 더럽혀졌거나 아예 썩은 지경에 접어든

경우다.그런 눈으로 보는 것이 이른바 견탁(見濁)인 것이다.

흔히 견탁은 더러운 마음,곧 부정심(不淨心)에서 온다고도 한다.이것은 몸과

마음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정심(正心),곧 바른 마음이면

정견(正見)이 절로 된다는 것도 역시 같은 줄기의 말이다.

정심과 정견은 물론 누구에게나 요구돼야 할 덕목이다.그런데 이 덕목은

우리나라의 신문과 방송에 있어 특히 강조돼야 할 덕목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그 까닭은 두가지점에 연유한다.첫째는 너무나 많은 견탁 또는 탁견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다.둘째는 이러한 상황에서 매스컴은 견탁의

주역이나 조역이어서는 존재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견탁 내지 탁견을 말할 때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섯가지로 구분되기도

한다.첫째는 이른바 신견(身見)이다.신견이란 자기중심적인 입장에서 사물을

보는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이런 태도는 매우 이기주의(利己主義)적인

생각이나 보도태도와 직결된다.이것은 매스컴이 반드시 지양(止揚)해야 할

과제의 하나다.

둘째로 지양해야 할 것은 변견(邊見)이다.변견이란 한쪽만 보는 것,일방적인

견해에만 매달리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오늘날의 매스컴이

다면적(多面的)이면서도 종합적이고,그러면서도 근본적으로 문제를 봐야

한다고 지적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셋째는 사견(邪見)이다.올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사견인데 이것은 편견(偏見)과 더불어 매스컴이 절대적으로 범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강조해야 할 것같다.

넷째는 견취견(見取見)이다.견취견이란 고정관념이나 어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사물을 보는 입장을 이르는 말이다.이런 입장이 빚어내는 폐해는

학문이나 사상 뿐만 아니라 정치의 세계에서도 엄청나다고 할 수

있으며,매스컴 종사원들이 지양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의 하나라고 해야 할

것같다.

다섯째는 계금취견(戒禁取見)이다.계금취견이란 저 혼자만 잘난듯

고압적으로 훈계를 일삼으며 자기의 허물을 생각지 않는 자세를 일컫는

말이다.이것은 반성해야 할 당사자로서는 있을 수도,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일부

정치인이나 일부 언론의 계금취견은 그야말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 이규행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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