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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조선무약 노조, ‘솔표’ 두 번 살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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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솔표 우황청심원으로 유명한 84년 전통의 조선무약 경기도 안산 공장. 7일 이 공장 생산라인 앞에서 박정열 노조위원장과 회사 대표 격인 박종환 경영위원장이 서로 손을 맞잡고 감격스러워했다.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멈춰 섰던 공장을 두 달여 만에 재가동하는 순간이다. 이날 풍경은 세계적 경기침체로 인근 안산 지역 자동차부품 회사들이 잇따라 문닫고 있는 상황과 대비됐다.

우황청심환 시장은 오래전부터 과열 상태였다. 조선무약은 업체 간 출혈 경쟁이 심한 상태에서 수익성 악화로 2000년 부도를 냈고, 2002년에는 화의인가를 추진했다. 박정열 노조위원장은 당시 화의인가를 반대하던 100여 명의 채권자로부터 동의서를 받아냈던 기억을 이날 떠올렸다. 노조원들이 삼삼오오 조를 짜 채권자들 집 앞에서 밤을 새우며 기다렸다. 이들에게 화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일일이 동의서에 도장을 받아 왔다. 이렇게 해서 조선무약은 화의에 들어가 회생의 길을 걸었다.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가동이 중단됐던 조선무약 공장이 노사가 힘을 합치면서 다시 돌기 시작했다. 7일 경기도 안산 공장 안에서 박종환(앞줄 왼쪽) 경영위원장과 박정열 노조위원장이 손을 맞잡았고, 회사 임원과 노조 간부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안산=김경빈 기자]

합작회사인 이 업체의 창업주는 한의사였던 고 박성수 회장이다. 그의 아들인 박대규(69) 회장은 부도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대신 노조와 공동으로 경영위원회라는 협의체를 만들었다. 창업자의 3세인 박종환(41)씨가 경영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맡았다. 전현수 생산이사와 박정열 노조위원장이 위원이다. 노사협력으로 재기를 모색했다. 회사의 크고작은 일이 경영위원회에서 결정됐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다시 회사가 어려워졌다. 국제 원자재값 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노조는 오랜 전통의 회사를 다시 쓰러뜨릴 수 없다며 사측과 함께 발벗고 나섰다. 노조원과 임직원이 한 조가 돼 전국의 약국을 돌며 판촉 활동을 했다. 반응이 좋아지기 시작한 지난해 7월 엉뚱한 이유로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도매상이 40여억원의 부도를 내고 잠적했다. 대금을 현금으로 결제하던 도매상이 언제부턴가 어음으로 건넸다. ‘일단 물건부터 돌리자’는 급한 마음에 이를 받았다. 납품업체에 물건값으로 이 어음을 주기도 했다. 도매상이 부도나자 납품업체까지 달려와 대신 갚을 것을 요구했다.

박종환 경영위원장은 “화의인가 뒤 내실을 다지고 노사가 땀흘리며 255억여원의 빚을 갚는 데 주력했다”며 “생각지도 못했던 도매상 부도로 다시 절망에 빠졌다”고 말했다. 노사 공동 판매 캠페인까지 벌였던 노조원들도 망연자실했다. 잘 나오던 월급도 7월 이후 두 달에 한 번꼴로 지급됐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환율 피해까지 큰 납품업체들은 지난해 11월 끝내 원료 공급을 중단해 조선무약은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이때 40여 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남은 노조원들은 이렇게 허망하게 회사 문을 닫을 수 없다며 사측과 다시 뛰어보자고 제안했다. 박정열 노조위원장은 또다시 170명의 노조원을 설득했다.


“노사가 힘을 합해 수많은 위기를 넘었는데 여기서 주저앉으면 과거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박종환 경영위원장도 올해 안으로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합자회사인 조선무약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일부 지분을 직원들을 위한 스톡옵션으로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사측의 비전 제시에 노조원의 동요도 진정됐다. 일부 임금을 유보 또는 반납하고 회사가 정상화됐을 때 돌려받자는 의견도 노조 내에서 흘러나왔다. 회사가 망하면 우리도 죽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노조가 납품업체들을 설득한 끝에 다시 원료를 공급받아 이날 공장이 재가동된 것이다. 또 주식회사 전환을 위해선 채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노사는 이들 채권자를 다시 설득하기로 했다. 또 투자를 원하는 업체들과 활발하게 접촉 중이다.

이 회사 노사는 올해의 경영 화두를 ‘변화와 단합’으로 정했다. 박종환 경영위원장은 “미국서 MBA(경영학석사) 공부를 하면서 각종 경영 기법을 배웠지만 어려울 땐 ‘단순한 법칙’이 해결책이었다”며 “노조와 협력업체, 채권단 등 이해당사자와 마음과 마음이 통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박정열 노조위원장도 “노조원들을 다독여 회사를 살리는 것이라면 어떤 일도 할 것”이라며 “요즘같이 어려운 시절 회사가 있어야 직원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뼈저리다”고 덧붙였다.

◆조선무약=솔표 브랜드로 알려진 한방의약품 전문기업이다. 주력제품은 우황청심원. 매출은 1990년대 중반 800억원대에 육박했으나 화의 이후 300억원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매출은 다시 절반으로 내려앉았다. 임직원수도 호황기 때 800여 명이었으나 현재는 180여 명 수준이다. 합자회사로 자본금은 7억2000만원.

안산=심재우 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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