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열며>1주일간의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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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래전 군대에서 군종신부로 복무할 때였다.한번은 한 장교로부터“너무 바빠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3년이나 찾아뵙지 못하고 겨우 전화나 가끔씩 올리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물론 나라를 지키느라 바쁘셨겠지만 가장 소중한 국가,가장 소중한 국민은 부모님이 아니겠습니까.부모님께 충심으로 드리는 효도는 튼튼한 국가,건전한 국민을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그러나 정작 나 자신도 말만 앞세웠을 뿐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하고 아버님을 땅에 묻은 죄인이 됐다.

아버님은 몇번 이런 말씀을 하셨다.“난 신부하고 한 1주일 동안만 저 남쪽지역 여행 좀 같이 했으면 좋겠어.난 그쪽을 못 가봤거든.”그때마다 나는“예,아버님 바쁘지만 시간을 한번 내 보겠습니다.좀 기다려 주세요”라고 대답을 드리곤 했다.그러나 아버님은 효도라는 것은 기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라도 하듯 훌쩍 떠나셨다.

자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하시기를 좋아하셨던 아버님,신부가 된 아들을 만나면 그 앞에 무릎을 꿇으시고 고해성사를 드리시던 아버님,아들 딸 6남매를 농삿일로 키우시느라 손가락의 지문조차 닳아 없어져 주민등록증에 지장을 찍을 수 없으니 1주일간만 일을 하지 말고 다시 면사무소에 오라는 충고를 들으셨다는 아버님.하느님께서 건강을 주신 뜻은 자기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요,모든 이웃을 위해 주신 것이니 할 수 있는데까지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해 이웃을 도와야 된다고 하시며 풍성하게 지은 호박.고추.가지.채소 등을 골목길 이웃들에게 늘 나눠주시던 아버님. 지난 여름 3주기 미사를 올리고 1주일 동안 아버님 산소 옆에서 천막을 치고 지내면서 나는 생각했다.이제야 비로소 아버님이 함께 하기를 원하셨던 1주일간의 여행을 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리어왕'에 보면'효도할 줄 모르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집안에 독사의 이빨을 키우는 것과 같다'는 말이있다.이 말의 뜻이

무엇이겠는가.아무리 좋은 옷을 입히고 이름있는 학교 교육을 시켜도,또한

좋은 곳에 취직이 되고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받아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이 없는 자녀로 자라게 되면 훗날 부모의 발뒤꿈치를 독이 든 이빨로

물어뜯는 독사가 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일찍이 율곡 선생께서는'인간이

지을 수 있는 죄가 3천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죄가 불효하는 죄'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선생은 모든 것을 다 이룬다 해도 불효를 하는 자라면 모든

것에 있어 실패자라고 하셨다.

오늘날 이 사회의 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사회적 무질서가 판을 치는 근원적

이유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가장 큰 이유는 효심의 결핍에서 오는

결과들이다.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이가 어찌 타인을 공경하겠으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이가 어찌 타인에게 교만과 위선을 떨겠는가.나는 임지에 가는

곳마다 초.중.고등학생들에게 내게 인사할 때는'효도하겠습니다'라고

인사하라 이른다.불효가 3천 가지 죄중에서 으뜸이라면 효도는 모든

덕행중에서 가장 뿌리가 되는 덕행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국군 모 부대에서는 위병소 옆에 효자각을 세워놓고 부모가 면회오면

효자각에서 큰절을 올린 후 안부를 묻도록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전선을

지키는 병사가 효도하는 마음이 크다면 그만큼 나라도 사랑할 것이고 자기

일에 충실할 것이다.성서 출애굽기와 불교 경전 부모은중경에도 부모님에

대한 효도의 중요성이 나온다.효도하는 마음이 축복을 얻는 길이며,죄를 씻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부모가 보여주신 희생과 사랑에 대한 보답을 다 갚을 수 있는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다만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효도에 게으르던 지난날을

늦게라도 용서빌고자 저물어가는 오월 어버이날 밤 아버님 영정 앞에 무릎을

꿇는다. 김영진 <정선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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