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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보고세로읽기>따뜻이 포개져있는 것들은 얼마나 눈물겨운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의 멋진 사진을 보고 있다.물웅덩이를 펄쩍 뛰어넘는 사람.바닥에 닿기 전 찰나의 아름다움.탁월한 우연의 포착.아,탄성이 절로 나온다.고난의 웅덩이도 저렇게 상큼하게 뛰어넘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는 사진 예술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그는 사진 작업중'결정적 순간'의 중요성을 느끼고,그것을 기초로 영상의 완전함에 정열을 쏟았다.사진집 제목도'결정적 순간'이다.그 책의 후기엔 자신의 예술관과 방법론도 뛰어나게 기술해 후대 사진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 라이브 포토는 삶의 역동성을 표출해 우리에게 생의 활기를 준다.또 한장의 사진도 그렇다.나는 이게 뭔가 하고 한참 들여다봤다.아,사랑하는 거로구나.한 남자의 몸에 여자의 몸이 포개져 있다.엎치락뒤치락,침대 위의 남자선수.여자선수가 너무 힘들 것 같아 떼어놓고 싶어진다.쉬었다 좀 하라고 냉수와 간식도 갖다주고 싶다.

이 절정의 순간을 찍은 브레송도 수전증 환자처럼 떨렸나 보다.사진도 떨린 채로 아른아른 신비하게 남는다.이 불선명함은 의도적 기법이리라.육체는'그 동물성 때문에 시적이고 신적일 수 있다'.여기서 무조건적인 성행위와 에로티시즘은 다르다.

에로티시즘,즉 사랑하려는 육체의 포옹은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려는 행위다.삶의 확장이고 화합하려는 춤이다.이 사진처럼 진하게 포개진 에로티시즘은 아름답다.그래,따뜻이 포개져 있는 것들은 얼마나 눈물겨운가. 조용필이 찡하게 부르듯 그 놈의 정이란 것,겨울에 눈내린 들판,치렁대며 꽃피는 산,신뢰 깊은 악수.포옹.키스,아무튼 찡한 것들….세상의 뒤틀리고 어긋난 것들이 진심으로 포개진다면 얼마나 기쁠까.남한과 북한도 따뜻하게 포개질 수 있다면.통일이 돼 죽어가는 북한 주민을 좀 더 살려낼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으리라. 또 하나 바람이 있다면 진솔한 사회분위기 조성이다.한보청문회에서 만발한 거짓말은 북한땅만큼 춥고 절망스러웠다.왜 자꾸 거짓말과 악수할까? 참으로 어리석다.진실로 책임을 지고 뉘우쳐 고백하면 국민은 용서해줄 수 있을텐데….두번 부끄럽지 않을 결정적 순간을 놓치다니.쯧쯧. 가정도 나라도 위기와 절망은 있어도 좋다.그러나 절망을 이길 수 있게 마음은 따뜻해야만 한다.따뜻하기 위해 모두가 거짓없이 솔직해져야 한다. 신현림<시인>

<사진설명>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작품 '멕시코,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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