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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첫 직장은 뉴욕 공공도서관이 구해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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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20면

“도서관은 문헌과 자료가 있는 공간 그 이상의 것입니다. 보다 큰 세상을 향한 창(窓)이며, 인류의 역사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보다 원대한 생각을 언제나 찾아낼 수 있는 곳입니다.”

도서관 2.0 시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도서관 예찬이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디애나 B 마르쿰 부관장은 “오바마는 도서관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말했다. 오바마와 도서관은 각별한 인연이 있다. 그의 첫 직장을 찾아준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오바마는 지역 단체에서 일하고 싶었다. 뉴욕 공공도서관 미드 맨해튼 분관에는 큰 규모의 직업정보센터가 있다. 시인들의 취업 정보까지 갖추고 있을 정도로 전문적이다. 이곳 사서가 소개해 준 단체들에 전부 편지를 보낸 끝에 오바마는 시카고의 지역 단체에 취직하게 됐다. 오바마는 “도서관이 아니었다면 내가 시카고와 인연을 맺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책이 있는 공간’을 뛰어넘어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도서관은 세계적 추세다. 뉴욕 공공도서관은 미래의 독자인 청소년들을 위한 행사를 열기 위해 휴관을 하는가 하면 아름다운 건물을 활용해 결혼식 장소로 대여하기도 한다. 세계적 건축가 쿨 램하스가 설계한 시애틀 공공도서관은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완전 개방형의 ‘열린 공간’으로 아동용 게임기까지 비치해 놓은 시민들의 놀이터다. 일본에는 만화·음식 등 대중의 관심사와 맞닿은 전문 도서관이 있고, 프랑스 도서관에서는 음악회·전시회가 대중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단순 지식 창고를 탈피해 새롭게 진화해 가는 도서관의 모습은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보 홍수 시대에 믿을 만한 정보를 가려 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열면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과연 도서관이 유용하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노우진 국회도서관 과장은 “부정확한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에 오히려 도서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노 과장은 미국·유럽의 도서관에 보편화된 ‘사서에게 물어보세요(Ask librarian)’ 제도를 예로 들었다. “인터넷에 질문을 올리면 네티즌이 답을 하는 한국의 지식 검색 프로그램처럼 인터넷으로 도서관에 질문하면 사서가 검증된 정보를 답해 주는 겁니다. 24시간 내내 언제든지 질문과 답변이 오가니 편리하고 지식 검색처럼 부정확한 정보에 대한 우려도 없고요.”

도서관의 ‘디지털 진화’는 인터넷 정보의 옥석을 가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프라인 도서관의 영역을 뛰어넘는 ‘전자도서관’이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일상화된 시대 환경에 맞추기 위해 도서관의 보유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은 꾸준히 진행됐다. 세계의 도서관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애초부터 디지털화된 정보를 수집·보존하는 데에도 앞장서고 있다.

순간순간 명멸하는 인터넷 정보를 영구적으로 자료화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국회도서관 간사이(關西) 분관의 와나카 미키오 관장은 “한·일 월드컵 당시 개설됐던 관련 사이트들이 지금은 모두 웹상에서 소멸됐지만 일본어 사이트는 모두 보존해 놓았다”고 말했다. 한국 국회도서관도 18대 의원 299명의 홈페이지를 시작으로 디지털 자료 보존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인터넷 시대가 도서관의 존재를 위협하리란 우려가 존재하지만 세계의 도서관들은 오히려 그들끼리의 네트워크를 통해 존재를 확장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법률 도서관인 미국 의회도서관 부속 법률 도서관은 ‘GLIN’이란 세계 법률 네트워크 DB를 만들었다.

이 사이트에서는 51개국 17만 건의 법률 자료를 한국어·아랍어 등 14개 언어로 제공한다. 제니스 하이드 미국 법률도서관 과장은 “해당 국가의 법조문과 입법 기록, 법률 논평 등을 원문 그대로 볼 수 있고 번역 서비스도 동시에 제공된다”며 “가맹국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식 자료를 입수하기 때문에 신뢰도와 출처가 불분명한 인터넷 자료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도서관은 기존 자료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로 진화했다. 기존 자료를 검증한 뒤 재가공해 보고서나 책자 형태의 새로운 자료로 내놓는 것이다. 도서관의 재가공 도서는 ‘팩트북(factbook)’ 형태가 많다.

국내에서도 최근 도서관이 펴낸 첫 팩트북이 나왔다. 국회도서관은 오바마 당선 1주일 만에 오바마의 성장 배경과 정책을 담은 팩트북 '오바마 한눈에 보기'를 펴냈다. 의원들의 호응으로 초판이 금세 소진돼 2쇄를 찍었다. 유종필 국회도서관장은 “우리나라 역대 영부인에 관한 팩트북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근대 이후의 도서관은 정보를 얻기 어려운 일반인에게도 평등하게 지식을 제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겨났다. 국회도서관의 이용 제한이 대학원생 이상에서 만 20세 이상으로, 다시 만 18세 이상으로 계속 문턱을 낮춘 것도 민주화 역사와 큰 흐름을 같이했다. 세계의 도서관에는 모두 이러한 평등의 정신이 흐른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동네 도서관이었다”며 그가 중퇴한 하버드대에서보다 도서관에서 더욱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문턱을 낮춰 대중과 최대한 호흡하는 동시에 소수를 위한 서비스도 병행한다. '연구도서관'이 좋은 예다. 이곳은 전문 연구자들만 이용할 수 있으며 자료를 보며 연구할 수 있는 공간과 서비스가 제공된다. 희귀한 자료를 볼 수 있는 특권도 있다. 국내에는 아직 이러한 연구도서관이 없다.

장애우를 위한 도서 서비스도 같은 맥락이다. 점자책이나 음성책은 개발비가 많이 드는 데 비해 수요가 적기 때문에 도서관이 아닌 민간에서 개발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미국 의회도서관 부속 장애인 도서관의 프랭크 쿠르트 실크 관장은 “시장에 맡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서비스를 개발한다”며 “최근 500만 달러를 들여 새로운 형태의 음성책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와 스칸디나비아 3국에서도 장애인 공공도서관이 잘 운영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7년 국립 장애인도서관 지원센터가 설립됐다.
종이와 디지털, 오프라인과 온라인, 대중과 소수를 아우르며 도서관은 ‘21세기 신(新) 정보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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