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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수로가 운하 되면 일자리 5배로 늘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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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08면

6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전호리 일대. 경인운하 출발지인 김포터미널이 들어설 곳이다. 한강 쪽으로 오른편은 행주산성 방향으로 이어지는 행주대교, 왼편은 외곽순환도로가 관통하는 김포대교다. 인적 드문 곳이지만 식당이 있다. 한강가든 김후권(56) 사장은 “식당 바로 앞으로 터미널이 들어서게 돼 기대가 크다”며 “수자원공사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땅을 사려고 많이 왔다 갔다 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지난해 땅값이 많이 올랐는데, 정부가 헐값에 사들이려고 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인운하로 바뀔 굴포천 18km 걸어 보니

땅을 사려고 문의하는 외지인도 늘었다. 하루 전인 5일 정부는 경인운하를 3월에 착공한다고 발표했다. 삼성공인중개 관계자는 “문의 전화가 많아졌다”며 “전호리 일대 농지는 3.3㎡당 7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고, 도로변은 120만원을 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래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 주택이 들어선 거주지(취락지구)는 2년여 전 그린벨트에서 풀렸으나 나머지 땅은 대부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아직 운하 주변 땅값이 들썩이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장승백이 부동산 한승배 대표는 “지난해에 비해서는 찾는 이가 오히려 줄었다”며 “문의 전화만 간간이 걸려 온다”고 말했다. 땅값이 뛸 것이라는 기대는 큰 편이다. 송월공인중개 관계자는 “땅 주인들이 매물을 회수하고 있다”며 “보상금이 많이 풀리는 만큼 경기가 회복되는 대로 거래가 늘고 값도 뛸 것”이라고 말했다.
 
3.8㎞ 수로 땅 이미 사뒀다
수자원공사는 토지 보상금으로 3289억원을 풀 계획이다. 3.8㎞ 수로 구간은 2003년 운하 사업이 중단되기 전에 매입했다. 김포터미널 부지 198만㎡만 추가로 사들이면 된다. 국토해양부 이우제 팀장은 “최근 땅값이 하락세라 보상금이 예상보다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수자원공사는 이미 협의 매수에 착수했다.

한강 반대쪽 김포 쓰레기매립장으로 향하는 도로는 구불구불 논밭을 휘감는다. 멀리 틈새로 굴포천이 보인다. 주변 논밭엔 군데군데 빨간 깃발이 꽂혀 있다. 굴포천 방수로(放水路)에서 3.8㎞만 물길을 더 이으면 이곳 한강변에 닿는다.

조선시대의 굴포운하 계획도

전호리 논밭을 에둘러 쓰레기매립장 도로를 따라 인천시 계양구 굴포천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시작한 폭 80m의 방수로는 14.2㎞를 쭉 뻗어 서해까지 이어진다.

방수로는 홍수 때 물길을 바다로 돌리기 위해 판 물길이다. 물길은 100~300m 간격으로 갇혀 있다. 바닥을 파려면 물을 퍼내야 하기 때문이다. 구간별로 공사 진척도를 쉽게 점검하기에도 편하다. 입구에 세워 놓은 ‘낚시 금지’ 푯말이 눈길을 끈다. 한겨울, 가둬 놓은 물에서 웬 낚시? 그러나 그런 생각을 비웃듯 3~4명의 강태공이 얼음낚시에 한창이다. 공사 현장 관계자는 “아무리 막아도 낚시꾼이 몰려든다”며 “잡아도 먹지는 못하지만 손맛을 즐기러 오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수자원공사 나종국 차장은 “막힌 물이지만 수질 관리를 한다. 혹여 물고기라도 죽어 떠오르면 환경단체 등의 시선이 곱지 않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낚시꾼들이 공사 현장의 파수꾼 역할도 하는 셈이다.

운하 공사는 착공 전이지만 간간이 트럭과 굴착기가 눈에 띈다. 방수로 공사가 1992년 이후 16년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울이라 공사 진척은 그리 빠르지 않다. 인부들의 손놀림마저 여유로울 정도다.

경인운하는 사실 단순한 공사다. 총 18㎞ 구간 중 14.2㎞의 물길은 거의 완성됐다. 방수로용 물길을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조금 더 넓히고, 조금 더 깊이 파는 것만 남았다. 남은 3.8㎞의 물길을 새로 파고 터미널을 운하 양쪽 끝에 건설하면 그만이다. 여기에 군데군데 관광·레저 단지를 짓고, 갑문을 3개 더 설치하고 다리를 7개 놓는 정도다. 그런데도 세간의 관심이 과도(?)하게 많이 쏠리는 것은 경인운하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상징성 때문이다. 운하라는 이름 때문에 “대운하의 시범사업”(박용신 환경정의 사무처장)으로 보는 시각이 그중 하나다. 정부의 경제 살리기 프로그램 중 핵심인 녹색 뉴딜과도 연결돼 있다. 4대 강 정비의 시금석이기도 하다.

약 2.5㎞를 걸어가니 귤현교가 나왔다. 방수로 구간 중 서울 쪽에서 첫 번째 다리다. 교각도 없이 철근으로 옆을 얽어 놓은 모습이 왠지 엉성해 보인다. 나 차장은 “애초부터 임시 다리로 지었다. 언제 운하로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방수로를 가로지르는 다리라면 현재 높이(약 10m)로도 충분하지만, 운하가 되면 높이가 15.5m를 넘어야 한다. 배가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국토부 남영우 건축문화팀장은 “디자인 개념을 적용한다면 다리 자체가 훌륭한 관광상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수로일 때와 달라지는 것은 다리뿐이 아니다. 우선 공사비가 크게 늘어난다. 방수로 때 7500억원이면 충분하던 게 운하가 되면 2조2500억원이 든다. 터미널과 다리 등을 짓는 데 주로 들어간다. 일자리도 많이 늘어난다. 방수로는 지어 놓으면 그만이다. 관련 인력이 많이 필요 없다는 얘기다. 기존 방수로 14.2㎞만 놔두면 홍수 때 보름 정도 물을 빼는 데 쓰는 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3.8㎞를 더 연결하면 1년 내내 활용하는 운하가 된다. 운하는 여객과 화물을 싣고 나를 배와 터미널이 필요하다. 수자원공사는 방수로 때 남은 공사의 고용유발 효과는 5000여 명, 운하가 되면 올해부터 2011년까지 3년간 2만5000명으로 5배가 된다고 설명했다.
 
인천터미널 부지 확보에 돈 안 들어
녹색 뉴딜의 시금석이 될지는 분명치 않다. 방수로 옆으로는 15.6㎞의 제방도로가 인천~김포터미널을 연결한다. 그 밑으론 폭 4m 정도의 자전거 길이 이어진다. 인천에서 한강을 타고 전국을 일주하는 자전거 길과 연결될 예정이다. 곳곳에 생태공원을 지어 녹색을 실천할 계획이다. 이우제 팀장은 “운하는 연료 효율이 철도의 2.5배, 도로 운송의 8.7배”라며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상대적으로 적어 오염원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1시간여를 더 걸어 대절토 구간에 도착했다. 그 유명한 원통이고개(圓通峴)다. 고려·조선조 경인운하를 뚫으려던 이들을 좌절케 했던 400m 두께의 암반지대. 지금은 산 하나가 통째로 뚫려 물길이 나 있다. 수로 바닥에서 도로 부분까지 깊이만 40m. 주변에는 암반을 깎아 낸 골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목상교 난간에서 바라본 방수로는 웬만한 세계 유명 협곡을 뺨친다. 공사 현장의 한 인부가 “방수로 사진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라고 귀띔해 준다. 취재팀이 찾은 이날도 지방 신문과 모 잡지사에서 나온 이들이 현장 사진을 찍고 있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이곳이 협곡·배·다리·물을 한 폭에 담을 수 있는 명소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목상교 한쪽으로 대형 간판이 서 있다. ‘한강과 서해의 만남 경인운하’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그전엔 ‘굴포천 방수로, 2단계 건설사업’이란 글귀가 적혀 있던 자리다. 5일 발표와 함께 방수로에서 경인운하로 바뀐 푯말이 9개라고 한다. 13일엔 ‘굴포천 방수로 사업단’이 공식적으로 ‘경인운하 사업단’으로 바뀌는 개칭식을 하기로 했다.

목상교 부근 지역협의회 사무실을 찾았다. 덩그러니 지어진 가건물엔 여직원 한 명만 손님을 맞았다. 경인운하지역협의회 박한욱(65) 회장은 전화통화를 통해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백지화, 감사원의 재검토가 이어질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다시 좌초되는 일 없이 운하가 완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경제위기가 되레 운하 건설에 도움이 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운하가 완공되면 20피트 컨테이너 250개를 실을 수 있는 4000t급 선박의 운항이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2030년이 되면 연간 20피트 컨테이너 97만 개와 자동차 7만6000대, 여객 105만 명 등이 이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지고 수로의 물이 썩을 것이라는 반대론자의 지적은 여전한 숙제다. 일각에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운하의 재검증을 맡으면서 비현실적 ‘강-바다 겸용선’ 운행을 전제로 편익을 부풀렸다고 주장한다. 가톨릭환경연대 권창식 국장은 “경인운하는 정부가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을 강행했다가 결국 두 손을 든 시화호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며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운하의 서해 쪽 끝, 인천 갑문에 다다랐다. 평소엔 닫혀 있지만, 공사 측은 취재팀을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4층 높이 계단을 올라서니 방수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와 만나는 곳에서 50m쯤 거슬러 올라간 지점부터 물길은 얼어 있다. 빙판엔 얼음 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빼곡하다. 인천터미널 부지(280만㎡) 확보에는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다. 예정 부지가 수도권 매립지여서 무상으로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터미널에는 갑문 3기, 부두 14선식이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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