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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을 위한 L세대 대학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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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중고등학교에서는 ‘대학 가면 실컷 놀 수 있다’는 거짓말이 은근히 잘 먹힌다. 막상 대학 가면 거짓이 들어나는데, 중고생들은 그 말을 믿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입시 지옥을 도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 말이라도 믿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일까.

막상 대학에 입학하면 신입생 환영회와 입학식, 그리고 첫 MT(멤버십트레이닝)을 끝내면, 상당수의 학생들은 학점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학부제의 영향으로 학점에 따라 전공이 갈리는 것은 물론, 인턴, 취업에까지도 학점이 족쇄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한 학기동안 끙끙대며 리포트와 팀프로젝트, 시험, 쪽지시험 등에 치이고 겨우 방학을 맞이해도 인턴십, 어학공부, 봉사활동에 쉴 새도 없다. 이렇듯 대학은 취업을 위한 새로운 경쟁의 장이 되어버렸다.

반면, 기존의 사법시험 준비생은 그런 빡빡한 대학생활에선 조금 자유로울 수 있었다. 대학생활은 소위 ‘잘리지 않을 정도’만 하고 법학 공부를 해도, 합격만 하면 앞날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재학 중 합격을 하게 되면, 남들이 가장 고생하는 4학년 시절에 오히려 대학 생활의 낭만을 누릴 수가 있었다. 실제로 많은 사시 합격자들이 방황한 1학년 시절을 사법시험으로 만회하고, 마지막 1년은 정말 하고 싶었던 일만 하면서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로스쿨 제도가 시작됐다. 로스쿨을 준비하는 L세대 대학생에게 있어서 조기합격 이후 대학생활의 로망은 이제 누릴 수 없는 것이 됐다. LEET 성적과 함께 대학교 4년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성적은 로스쿨 입학의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로스쿨 입학을 위해선 4년의 기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도대체 4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한다는 건가. 검증된 로드맵이 없기 때문에 정답도 없다. 다만 로스쿨을 합격한 사람들의 대학생활에서 방향을 추출할 수 있을 뿐이다.

올해 로스쿨 합격자 발표는 두 단어가 화두였다. ‘학벌’과 ‘나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많은 지방 거점 대학의 로스쿨에서도 소위 'SKY'출신 학생을 주로 뽑았고, 사회 경험이 많은 직장인보다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의 합격률이 높았다는 언론보도가 많았다. 로스쿨협의회에 따르면 23~31세 합격자가 약 8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하니, 로스쿨로 제2의 인생을 찾으려는 세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합격자가 대부분이라는 이기다.

출제위원급 교수님들과의 대화에서 추론한 이유는 바로 ‘수험 잠재력’이었다. 1기 로스쿨 졸업생들이 졸업 때 치르는 변호사 예비시험에서 몇 명의 합격자가 배출되는지가 로스쿨의 평판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존 사법시험 제도에서도 일반인들 사이에서 ‘사시 합격자 수=법대 질’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올바르지 않은 편견이나, 로스쿨 입시를 관리하는 입학사정관의 입장에선 분명히 민감한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L세대의 프리로스쿨 기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교수님들의 조언을 종합해 보았다.

필자가 이렇게 로스쿨을 대비한 대학생활에 대해 글을 쓰면서도, 로스쿨 입학 기회가 학력과 나이로 극히 제한되고 있다는 점, 막상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모호하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로스쿨 입학사정은 대학의 자율성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정확한 기준을 알기가 어렵다.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실시된 로스쿨 제도가 건전하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정착되는 것이 시급하지 않을까 싶다.

장은호 칼럼니스트 jgoon83@hanmail.net